feat. 도사리고 있는 우울이란 위험
신입사원 신체검사가 있는 날이었다. 앞으로 내 동기가 될 사람들과 옹기종기 회사 강당에 모여 앉았다. 대략 20명 정도 되는 듯했다.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이대로 동기가 된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그래도 아직 최종합격통보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과 낯선 사람이 모인 곳 특유의 분위기로 우리는 적막감 속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때 여린 목소리가 적막을 깨고 옆에서 날라들었다. 처음엔 잘 못 알아들었으나 그건 분명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코코아야. 코코아 맞지?"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한 때 수업을 같이 들었던 같은 과 언니였다. 거의 4년 만의 조우가 너무 반갑고 신기했다. 언니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휴학하기 전에 한 학기 수업을 같이 들었었다. 그러고 내가 바로 휴학을 한 뒤 3년 동안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기에 언니와의 연락은 자연스레 끊겼다. 낯선 환경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움은 모두가 경험해 봐서 알 것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간의 회포 풀기는 신체검사가 끝나서도 이어졌다. 언니는 인턴을 하던 중 알게 된 사람을 통해서 이 회사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했다. 어떻게 하필 이 회사일 까도 싶고. 어떻게 같이 또 여기에 그것도 동기로 합격했나도 싶었다. 세상에 인연이란 정말 있나 보다 신기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조우를 뒤로 하고 정식으로 다시 볼 날을 기다렸다.
4학년 2학기 마지막 기말고사도 끝이 났고, 졸업 요건을 만족하기 위한 자격증도 다 땄다. 시원섭섭하게 학교를 떠났다. 회사에서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고, 기숙사 배정도 받았다. 1월 1일부터 연수가 시작된다는 공지를 받았다. 본가를 떠나서 타지 생활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기에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딱히 힘들일 없는 행복한 나날의 순간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깊은 우울과 공황은 내 안에 내재되어 언제 발현될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늘 꿈틀대고 있었다.
단순한 싸움이었다. 두 살 차이 터울의 동생과 사소한 것으로 종종 싸우곤 했는데, 이 날도 그랬다. 지나고 보면 뭐 때문에 싸웠는지 기억도 못할 만큼 사소한 걸로 싸움을 시작했고 크게 번졌다. 보통은 싸우고 씩씩대다가 시간이 지나 저절로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수순이었을 거다. 하지만 저 순간의 나는 회복탄력성이 매우 낮았다. 그 싸움으로 촉발되어 다시 심각한 우울에 사로잡혔다. 우울의 단계는 늘 이랬다. 특정상황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해, 나는 늘 왜 이렇지 라는 자기 비하, 모든 사람들이 날 싫어할 거라는 관계사고, 결국 나는 필요 없는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내 우울을 한없이 흩뿌리듯 털어놓았다. 듣는 이가 힘들고 걱정할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힘들고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기적인 언행을 끊임없이 토해냈다.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그게 꽤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남자친구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코코아가 위험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전달했나 보다. 그 소식을 들은 엄마는 너무 놀라서, 자취방으로 단숨에 달려왔다. 남자친구도 타지에서 달려왔다. 자정을 넘은 시간이었는데, 한밤중에 소동이 벌어졌다. 나는 엄마와 남자친구의 보살핌으로 점점 안정을 되찾아갔다. 길고 긴 밤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의 난 진짜 죽고 싶었던 걸까 싶다. 죽음을 끊임없이 생각했던 건 분명 맞으나, 오히려 살고 싶다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 외침은 애정결핍의 형태로 나타났다. 지인이나 친구들에겐 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외침을 편한 엄마와 남자친구에겐 끊임없이 했다. 지인과 친구들은 돌아설까 봐 무서웠지만, 엄마와 남자친구에게는 그만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참 이기적이었다. 그들에게 날 봐달란 외침이었지만 그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생각하니 정말 미안하다. 죽음을 깊숙이 생각할수록, 살고 싶어 졌고 관심과 애정이 고팠다. 그래서 살려달라고 계속 외쳐야 했다. 그래서 엄마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도 모를 전남자친구에게 참 미안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