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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아 Jul 09. 2024

야근이 뭐예요? 먹는 건가염?

2018.05~2018.06



이 즈음엔 야근을 꽤 많이 했다. 매월 초, 중순, 말에 배포해야 하는 리포트가 있었고 내부 및 외부 심사가 있던 달이라 준비해야 할 자료도 많았다. 회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부서가 중요하다고 부바부(부서 by 부서) 라더니, 진짜 그랬다. 동기들이 거의 모든 부서에 한 명씩 있었는데, 부서별 워라밸 차이가 꽤 컸다. 처음 몇 달간은 큰 차이를 못 느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절실히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부서 사수들은 야근을 익숙해했다. 4년 선배는 자기 입사 때는 9시 10시 근무가 기본이었다며, 심하게는 12시까지 근무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비선실세 대리님은 토요일 근무가 아직 시행되고 있을 때 입사했다고 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그래. 나는 매일 야근하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감지덕지해야지.'라며 위로가 되기도 했으나 생각보다 야근이 늦어질 때면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저런 구시대적 발상을 하고 있냐.'며 짜증이 불쑥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대리가 된 지금 사수들의 말을 되짚어 보면 세상은 참 빠르게 바뀐다는 게 절로 실감 난다. 기술의 발전속도를 사회적, 문화적 인식이 못 따라가는 것을 '문화지체현상'이라고 한다고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웠던 것 같다. 맞는 말이다. 내가 아직 마취학아동일 때 아빠가 엄청 큰 네모 난 박스 같은 전화기를 들고 다녔던 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 개인 휴대폰을 갖게 된 나는 그 당시 고아라폰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애니콜 폴더폰을 손에 쥐었다. 작고 하얗던 그 물체가 어찌나 예뻤던지. 개인폰이 생기고 매일 아침 친구와 출발 시간을 맞춘다고 집전화기로 신호를 주고받던 모습이 사라졌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시멜로 친구 코코아인데요. 마시멜로 있을까요?"


다른 가정으로 전화할 때 지켜야 할 전화예절에 따라서 인사-자기소개-용건 순으로 친구와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제 그런 불편한 과정 없이 친구폰으로 바로 문자 한 통이면 됐다. 그 변화가 참 신기하고 이상했다. 그리고 대학교에 올라가던 당시, 삼성에서 첫 스마트폰 '갤럭시 1'을 출시했다. 가격이 꽤 비쌌으나 입학 선물로 부모님께서 사주셔서 내 손에 들어온 갤럭시 1은 영롱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화면이 너무 커서 좋았고, 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서 게임, 쇼핑, 검색 모든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게 혁명 그 자체였다. 


그와 비슷한 시기에 카카오톡이 스마트폰 이용자라면 깔아야 할 필수앱으로 자리 잡았다. 카카오톡은 문자와는 차원이 달랐다. 우선 아무리 많이 보내도 돈이 안 들었고, 글자수 제한도 없었다. 한 화면에 정해진 글자수만큼 소중히 채워 넣어 보내지 않고, 한 글자씩 마구 써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청소년 신분을 벗어남과 동시에 손에 쥐어진 신문물 앞에서 나는 고삐 풀리 망아지처럼 카카오톡만 해댔다. 썸남과 강의 시간 내내 수업을 듣는 대신 주고받던 톡이 어찌나 신났었는지.


그리고 이제는 AI 시대에 접어들었다. 스마트폰의 수준을 한참 넘어선 로봇이 인간 대신 물건을 옮기고, 프로그래밍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 이런 기술의 발전 앞에 문화와 사회적 인식이 발맞추어 못 따라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기술은 등차수열이 아닌 등비수열로 변화 중이다. 하지만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냐 하면 그것도 결코 아니다. 초등학교 재학 당시, 놀토가 생겨서 너무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도 토요일까지 공부하고 일하는 게 당연한 세대를 지나왔다. 이제는 주 5일제를 넘어서 주 4일제 도입을 논의하는 회사가 생기고 있다.(실제 도입한 회사도 있다.) '회사에 뼈를 묻는 각오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것도 옛말이다. 더 이상 회사는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회사가 나를 언제 자를지를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니라 로봇이 나를 언제 대체할지를 우려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어쨌든 불과 7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야근에 시달리며 사회의 쓴맛을 알아가던 중이었다. 불평 없이 일하던 나의 사수들이 존경스럽고 커 보였던 시기를 지나, 그때 사수들의 위치에 온 나는 어떻냐고? 


사회는 지금도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욱여넣는 근무시간이 결코 업무성과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는 게 자명한 시대에, 나는 눈치 보지 않고 칼퇴하련다! (칼퇴는 한다. 그런데 눈치는 본다. 나는 문화지체현상에 시달리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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