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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맘은 아니지만...

by 꿈꾸는나비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첫 주 금요일 밤 9시, 기숙사에 있는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갔다. 밤 10시에 아이를 만나 주차장까지 캐리어를 질질 끌고 10시 반이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는 학교가 어땠는지, 새로 만난 친구들은 어떤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아이는 집이 최고라며 침대에 쓰러졌고 나는 캐리어에 담아 온 빨래를 쏟아냈다.


토요일 아침. 아침을 차리고 아이를 깨웠다. 밥대신 잠을 선택한 아이를 더 재우고 9시에 차에 태워 다니고 싶다는 주말반 학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왔다. 어제 가져온 빨래를 돌리고 집안 청소를 하고 점심을 준비하고 대충 먹을 걸 챙겨 1시에 학원에 데리러 갔다. 이동하는 차에서 아이 간식을 먹이며 하복 교복을 맞추기 위해 교복점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공용 주차장 진입에만 40분이 걸렸다. 겨우 주차하고 교복점에 들어가 10분 만에 하복 치수를 측정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떡볶이와 튀김을 사서 집으로 향했다. 준비해 뒀던 점심에 떡볶이와 튀김을 곁들여 먹으니 벌써 4시... 하루가 길다는 생각에 피곤했지만 아이가 먹고 싶다는 월남쌈을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고 저녁을 또 준비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8시 반... 치우고 정리하고... 그렇게 토요일이 갔다.


일요일 아침. 아침을 차리고 아이를 깨워 먹이고 다시 9시에 차에 태워 학원을 데려다줬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어제 널어놓은 빨래들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점심을 준비하고 다시 아이를 태우러 가서 데려왔다. 점심을 먹이고 치우고 아이 기숙사 짐을 다시 싸고 저녁을 준비해서 또 먹고, 남편에게 뒷정리를 부탁하고 아이를 태워 저녁 7시까지인 귀사 시간에 맞춰 학교로 향했다. 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집을 떠나 있어 보니 집이 그립다고 했다. 주말은 그에 비해 너무 짧다고... 엄마 생각도 많이 나더라는 쑥스러운 이야기도 했다. 첫날은 긴장해서 자고, 둘째 날은 지쳐서 자고 , 셋째 날 자려고 누웠는데 눈물이 또르르 흐르길래 '아, 나 힘들구나.'라고 생각했다는 아이 말에 코끝이 찡했다. 그래도 자기가 원한 학교이고 정말 만족한다고 했다. 다만 엄마가 자기 때문에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돼서 미안하다는 말에 "엄마가 대치맘이나 도치맘은 못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라고 했다. 하지만 속으로 '이걸 3년이나 해야 한다니...' 했다.


사실 나는 이런 걸 해본 적이 없다. 학원이나 학교 라이딩은 아이를 키우며 처음 해보는 일이다. 예전에 보지 못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학원가 근처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차량들, 학교 주변 큰 길가와 그 옆 공용 주차장을 가득 채운 차량들, 그 안에 섞여있는 내 모습이 낯설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이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 주는 수밖에...


얼마 전 대치맘을 풍자한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되어 본 적이 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차에서 시간을 보내는, 자녀의 교육에 관심과 열정이 가득한 부모들. 누군가는 공감했고 누군가는 조롱했던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며 나는 어떤 엄마인가 생각해 본다. 적어도 지금까지 아이들 공부를 주도하지 않았고 믿고 맡기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칭찬했다. 공부 외의 것들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같이 앉아 책을 보는 시간을 갖으려 노력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3년도 안 남은 아이의 대입을 겪으며 조급해하고 비교하고 다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얼마 전 공개된 아이 학교의 올해 대입 결과를 보며 나는 잠시나마 '그럼, 혹시 우리 아이도?'라는 기대를 했었다.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놀랍기도 했지만 남의 집 아이 입결에 우리 아이를 대입하는 어리석은 짓은 앞으로도 하지 말라고, 정신 차리라고 스스로에게 따끔하게 충고해 주었다.


앞으로 3년. 아이 기숙사와 학원을 오가며 내가 지치지 않기를, 그리고 오고 가는 차 안에서 아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기를 바랄 뿐이다. 대치맘이면 어떻고 도치맘이면 어떠랴. 아이가 원하는 것에 한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에 한해서 최선을 다할 뿐. 빨리 3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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