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현의 얘기를 듣고 조리원까지 어떻게 차를 몰고 왔는지 기억이 없다. 종현은 더 조사해서 연락 준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종현이 앞으로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벌써부터 걱정되었다. 더 조사했는데 자기가 잘못 알았던 거라고, 별 다른 건 없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어느새 다시 비가 내리고 있다. 한 달 넘게 계속되는 장마가 지겹게 느껴졌다. 손이 핸들에 쩍 달라붙어 있다. 땀인지 습기인지 모를 이 찝찝함이 싫다. 눈부시게 해가 쨍한 날이 오긴 올까.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조리원 현관으로 향했다. 바로 옆 건물 1층에 작은 마카롱 가게가 눈에 띄었다. 아내는 임신 후에도 건강하고 활기찼지만 임신 7개월부터 몸무게가 급격히 불기 시작해 일체 간식을 먹지 않았다. 커피 한잔과 즐겨먹던 마카롱도 이제는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마카롱 가게에 들어섰다. 작은 마카롱 가게 안은 형형색색의 마카롱으로 알록달록 빛나고 있었다. 아내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이것저것 골라 담아 가게를 나왔다. 아내와 아이를 보러 가는 길. 나는 아내와 아이가 궁금하고 아내는 선애가 궁금할 거고. 조리원 현관을 들어서자 안내 직원이 다가와 신상정보를 물었다. ‘김석원’ 이름 석자를 말하고 인터폰으로 방문자 확인을 받고서야 엘리베이터에 오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신발을 갈아 신고 304호를 찾아 나서려는데 아내가 나를 먼저 반겼다. 자연분만이 회복이 빠르다더니 아내는 뒤뚱뒤뚱 걸어와 환하게 웃어줬다.
“미안해, 힘들었지? 나 휴가 받았어. 내일까지 쉴 수 있어.”
“알았어. 이거 뭐야?”
아내는 내 손에 들려 있던 마카롱 상자를 받아 들고는 행복한 표정으로 내 팔짱을 끼고 잡아당겼다.
“지금 방에 아기랑 같이 있어. 얼른 가자.”
아내는 아까 보다 더 씩씩한 걸음으로 304호로 나를 안내했다. 자기 방인데도 남의 방을 몰래 들어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방안은 다소 덥게 느껴졌다. 아내 침대 바로 옆에 아기 침대가 놓여 있고 그 안에 아기가 꼬물거리고 잠들어 있었다.
“왜 아기를 묶어놨어?” 조심스럽게 물으며 아내를 돌아보니 아내는 키득거리며 내 등을 쓸었다.
“원래 신생아들은 팔다리 움직임이 제어가 안 돼서 이렇게 속싸개로 싸놔야 돼. 이러면 좀 더 안정감을 느끼거든.”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사람이 있다면 바로 이 아이가 아닐까 싶었다. 이 평화로운 얼굴을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싶다. 내 딸. 예정일을 훌쩍 앞당겨 갑자기 나오는 바람에 엄마 아빠를 혼돈에 빠뜨린 이 작은 꼬마를 언제나 바라보고 싶다. 출산 직후 느꼈던 외계인은 자기 별로 돌아가고, 하얀 뻘을 깨끗이 씻어내니 뽀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나를 내버려 두고 아내는 돌아서서 탁자에 올려뒀던 마카롱 상자를 열고 입에 하나를 가져갔다. 우린 이렇게 각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며칠간 괴롭던 일들은 다 사라져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로웠다. 마카롱 상자가 닫히고 아내는 조심스레 상자를 들고 냉장고로 향했다. 마카롱 상자가 사라지자 탁자 위에 놓인 서류가 눈에 들어왔다. 출생증명서가 놓여 있었다. 출생증명서를 집어 들자 그 밑에 출생신고서가 있었다. 그 순간 보이지 않는 주먹이 나를 강타했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벌렁거리는 건지 내 몸이 벌렁거리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냉장고에 마카롱 상자를 넣어두고 아내가 돌아서며 말한다.
“당신이 하도 바쁘고 앞으로도 바쁠 것 같아서 내가 처리하려고. 출생신고는 빨리 하고 싶어. 그래야 이름을 부르지. 내가 이름도 지었어. 당신은 그럴 여유가 없으니까. 당신이 싫다고 해도 나는 그 이름으로 하고 싶어. 김나나, 이제부터 나나야 우리 딸. 참 예쁜 이름이지? 나나.”
나를 강타했던 주먹이 이번엔 목구멍을 막아버렸다. 대답조차 할 수가 없다. 고개를 돌려 딸아이를 바라봤다.
“여보 괜찮아? 왜 그래?”
엄마의 갑작스러운 소란에 단잠을 깼는지 하얗던 얼굴이 시뻘겋게 일그러진다. 하루에 '나나'라는 이름을 말하며 예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을 두 번이나 만난다면 단순한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처럼 내 얼굴도 시뻘겋게 일그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