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7장 : 마지막 배 2090.07.31

by 꿈꾸는나비

보관된 종자를 싣고 갈 배가 출항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같이 갈 사람들의 명단은 발표되지 않았다. 선장의 고민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이 배가 떠나고 나면 이곳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고산지대였던 이곳이 해안가가 될 줄은 아무도 알 수 없었던 것처럼. 선장은 아까부터 몇몇 사람들을 불러서 면담을 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명단의 정보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선장이 노인 한 명을 불러들였다. 사람들이 일제히 그곳을 바라봤다. 노인은 허리를 숙여 배낭을 들어 어깨에 힘겹게 둘러매고는 선장을 따라간다. 선장은 노인을 사무실로 안내했다. 문도 제대로 달려 있지 않은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의자에 앉으며 선장은 책상 위 흐트러진 명단을 모으며 물었다.

“선장님 보다는 많은 거 아시죠? 올해 70살이 되었네요. 저를 부르실 때 사람들 보셨어요? 대체 무슨 일이냐는 표정들이었잖아요? 하하, 그런데 사실 저도 너무 궁금하네요. 왜 저를 부르셨는지.”

노인은 유쾌한 분이었다. 웃음소리가 편하게 들렸다. 이곳에 아직 웃음소리가 들릴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선장은 명단에 적힌 그녀의 이름과 나이, 이력을 하나 둘 훑어봤다. 그녀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30년간 게놈센터에서 일했다고 나와있었다.

“게놈센터에서로 일하셨다고요?”

“네, 다 지난 일이죠. 이제는 필요 없는 직업이지만요. 여기에선 요리사 할머니로 통해요. 에너지 바를 만들 때 쓰일 재료들을 검수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영양가 있는 것과 피해야 할 것, 그런 것들을 구별하는데 도와주고 있죠. 물론 맛이 없어서 문제지만요. 하하하”

“그렇군요.”

선장은 판단이 서지 않아 명단들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노인은 그런 선장을 조용히 지켜봤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의 배낭을 내려놓고 슬그머니 손을 배낭 안으로 넣었다. 그러고는 압축 비닐 팩 2개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선장 앞으로 쓱 밀었다. 순간 선장은 노인을 올려다봤다. 노인은 아까와는 다르게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가진 건 이게 전부예요. 그래도 500g씩 2개니까 1kg나 되죠. 이젠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거예요. 이걸 드리고 싶었어요. 나중에 배가 떠날 때 몰래 드리려고 했는데 지금 드려도 될 것 같네요. 오래되긴 했어요. 그래도 보관을 잘해서 문제 될 건 없을 거예요. 이게 뭔지는 아시죠?”

선장은 물건을 내려봤다. 흰색 가루가 비닐 팩에 2개로 나뉘어 있었다. 선장은 비닐 팩을 들어 올려 살펴보더니 옆으로 밀어 놓고 말했다.

“그 배낭, 잠시 볼 수 있을까요?”

노인은 주춤하다 배낭을 건넸다. 선장은 낡은 배낭을 열어 그 안의 물건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선장은 다시 그녀의 이력이 담긴 종이로 시선을 옮겼다.

“저희와 같이 가시죠?”

“네?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럴 수는 없죠. 저는 이곳에 남겠어요. 저는 가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이제 쓸모없는 노인네라고요. 이건 그냥 드리는 거라니까요! 그냥 가져가세요? 네?”

선장은 서류에 펜으로 뭔가를 써 내려가며 눈을 떼지 않은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제 명단이 완성되었네요. 같이 가시죠.”

“아니요 선장님, 절 보세요. 절 보시라고요!”

노인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선장은 하던 일을 멈췄다. 유쾌했던 노인은 사라지고 성난 노인이 얼굴을 붉히며 서있었다.

“저에게 남은 시간이 많아 보이나요? 그냥 이거나 가져가시라니까요?”

이제 노인의 목소리가 커졌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지 마세요! 밖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을 보시라고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에요. 네? 제발 그들을 데려가세요. 전…, 전…”

노인은 사무실 밖을 손으로 가리키다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노인이 얼굴까지 붉혀가며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선장은 명단을 다시 추려 모아 쥐고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한번 명단을 살피며 말했다.

“한 시간 후면 출발할 수 있을 겁니다. 준비하고 계세요. 선원들이 안내할 겁니다.”

선장은 노인을 지나쳐 문 앞으로 걸어가다 다시 돌아와 노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가서 꼭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게 뭐죠?”

“가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선장은 노인의 몸에서 손을 떼고 돌아 나가다 잠시 멈춰 섰다. 그러고는 뒤돌아 노인에게 말했다.

“저 비닐팩 중 하나는 여기 사람들에게 남겨주시죠. 그들도 저걸 만끽해보고 싶을 겁니다. 그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겁니다.”

노인은 우두커니 서있다 손목시계를 바라보고는 책상 위의 비닐 팩을 서둘러 배낭 안에 넣고 방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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