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한 사춘기의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아이의 첫 중간고사가 있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딸아이와 나는 서로 긴장하고 있었다. 같이 긴장했어도 이유는 달랐다. 아이는 시험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긴장하고 나는 아이가 어떤 반응을 할지 몰라 긴장하고.
시험 첫날, 아이의 국어 시험이 있던 날, 아이는 12시쯤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나 몇 점인지 알아요? 67점이요!"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잘했다고 해야 하나... 위로해야 하는 거야? 아 모르겠다...) "아~ 잘했네~!!"
"엄마 67점 이라니까요? 내가 한국 사람인데 국어가 67점이에요. 아니 어떻게 풀었는데 이 점수가 나오냐고요. 평균이 63점인데. 망했어요."
"괜찮아, 처음이잖아. 문제가 어떻게 나오는지도 몰랐는데 경험한다고 생각하고 시험 봐."
아이는 처음 맞아본 점수에 충격이 컸는지 한동안 카톡으로도 푸념을 전해왔다.
둘째 날, 수학시험이 끝나고 아이는 또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수학 마지막 서술형 문제는 풀지도 못했어요. 근데 객관식 3개 찍었는데 2개 맞았어요. 그래서 80점 맞았어요."
"와~, 잘했네, 잘했다."
"어제 보다는 좀 잘 본 거 같아요. 근데 수학 공부 진짜 열심히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다 풀지도 못했어요. 아, 진짜 잘하고 싶었는데. 아, 정말 어떻게 하지."
셋째 날 영어 시험이 끝나고 아이는 또 전화를 했다.
"엄마, 나 80점이에요. 진짜 너무 어려웠어요. 근데 만점자가 있어요. 그것도 많이요. 다들 왜 그렇게 영어를 잘하지? 내일 사회랑 과학이랑 진짜 잘 준비해서 내일 잘 볼게요."
마지막날 모든 시험이 끝나고 아이는 또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진짜 사회랑 과학 시험공부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오늘 진짜 잘 봤어요."
"그래, 고생했다. 오늘 좀 쉬고 엄마가 내일 데리러 갈게. 푹 쉬어."
"엄마, 나 진짜 많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나 이번 시험 점수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점수인데 한 번도 안 울었어요."
"와, 그러네, 너 많이 컸구나."
4일 동안 아이는 고등학교 첫 시험을 치르며 몸도 마음도 지쳐갔다. 전화와 카톡에서 느껴지는 아이의 불안감과 실망감에 걱정이 되긴 했지만 아이는 자기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두 달 만에 아이가 많이 큰 느낌이 든다. 계단식 성장이 이루어진 순간이랄까. 아이의 성적보다 성장에 더 많은 관심과 칭찬이 필요한 순간이다. 아이의 성장에 맞춰 나도 성장할 수 있기를... 중간고사가 끝나고 긴 연휴 동안 아이는 먹고 잠만 잤다. 그동안 못 잔 잠을 다 채우려는 듯, 소진된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듯. 그리게 완충을 하고 아이는 다시 기숙사로 돌아갔다. 짐을 끌고 들어가는 아이의 모습에 이전에는 볼 수 없는 성숙함이 느껴졌다. 내 품을 떠나니 더 어른이 된 듯하다. 내가 품에 오래 품고 있었나? 아이의 성장을 위해 우리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져야 하나 보다. 아이는 비어진 물리적 공간을 스스로 채워 나간다. 우주의 티끌이 된 것 같다고 푸념하던 아이는 어느덧 좀 더 큰 티끌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의 사춘기는 오늘도 무르익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