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국밥
함께한 사춘기의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
기말고사 마지막날, 딸아이는 울면서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이러다 대학도 못 가면 어떻게 해."
"괜찮아, 잘했어. 너무 울지 마, 머리 아파."
평생 받아본 적 없던 점수에 충격도 받고, 그 와중에 잘 본 아이들이 많은 것에 또 충격받고, 대체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느끼는 답답함까지. 4일간 계속된 시험에 지쳐 아이는 결국 마지막날 눈물을 쏟으며 전화를 했다. 괜찮다는 말도, 다음에 기회가 또 있다는 말도 아이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금요일 저녁, 기숙사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는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일 저녁에 콩나물국밥 먹으러 가면 안 돼요?"
"그래, 가자."
뚝배기에 담긴 밥과 콩나물, 뜨끈하고 맑은 국물에 양념장. 같이 나오는 수란과 김, 김치가 다인 소박한 콩나물 국밥이 큰아이의 힐링푸드였다. 가끔씩 힘들고 지칠 때면 가족들과 친구들과, 때로는 혼자서라도 콩나물국밥을 한 그릇 비우며 그동안의 힘듦을 털어내는 시간을 가지곤 했었다.
토요일 저녁, 가족 다 같이 콩나물국밥집으로 걸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얼마나 오랜만에 이렇게 동네 한 바퀴를 여유 있게 거니는지에 대해, 한 학기를 잘 끝낸 것만으로도 잘했다는 격려와 잠시 충전의 시간도 갖고 쉬어 가자는 얘기도. 국밥집에 들어가 국밥 4개를 주문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에 수란이 나왔다. 아이는 김을 몇 장 찢어 수란 위에 두고 국물을 몇 숟가락 넣어 휘 저어 후루룩 먹었다. 그러고는 콩나물과 밥을 저어 한술 뜨고 깍두기를 올려 크게 한입 먹었다.
"그래, 이 맛이지."
뜨끈한 국밥을 후후 불며 아이는 한 그릇을 싹싹 비워냈다. 국밥 한 그릇이 아이의 지친 마음을 위로했다. 부디 이 한 그릇이 새로운 한 주를 보낼 힘이 되기를.
해가 지자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향했다.
"엄마, 나 잘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아, 잘하고 싶다."
충전완료. 국밥 한 그릇에 아이는 소모된 에너지를 다시 채운다. 때로는 위로의 말보다 맛있는 음식이 더 큰 도움이 되나 보다. 앞으로도 딱 국밥 한그릇 만큼만 힘들기를, 한그릇 가득 채운 위로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기를 바래본다. 우리의 사춘기는 오늘도 완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