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철 그리고 빌딩숲
함께한 사춘기의 시간을 글로 남깁니다.
며칠 전 큰 아이가 롯데월드로 체험학습을 갔다. 이전에는 버스를 대절해서 단체로 가거나 가까운 곳으로 갔는데 이번 체험학습은 제법 거리가 먼 곳으로 개인이동이었다. 차로 데려다주자니 그 아침 출근시간에 잠실까지 시간 내에 도착할 자신이 없었기에 광역버스와 지하철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두고 아이와 고민했다. 결국 광역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하기로 했는데 결국 버스가 만차라 아이는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며 가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롯데월드에 도착한 아이는 잘 도착했다는 문자와 중간중간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내줬다.
체험학습을 다녀온 아이의 첫마디는
"엄마, 나는 지하철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 봤어요.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흘러 가더라니까요. 내 친구는 발이 허공에 둥둥 뜬 채 떠가는 기분이었데요."
통근 시간에 지하철을 경험한 아이는 꽤나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나왔는데 사방에 고층 빌딩들이 얼마나 많던지. 길을 못 찾겠더라고요. 사람들한테 물어보려고 하는데 힘이 하나도 없이 지친 얼굴에 핸드폰만 다들 보고 있어서 말도 못 걸겠더라니까요."
서울에서 가장 복잡한 강남과 잠실을 경험한 아이는 처음 보는 광경이 놀라웠으리라. 길눈도 어두운데 핸드폰으로 지도를 봐도 주변이 너무 복잡해서 어디가 어딘지 감도 없었고 다시 가도 못 찾을 것 같다는 아이.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그래서 지옥철이라고 하잖아. 우리가 사는 동네나 한적하지 서울중심가는 다 그렇게 복잡하지. 괜히 빌딩숲이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겠지. 거기에 모여있는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근데 다들 표정이 왜 그랬을까요?"
"출근길이잖아. 힘들지."
"그럼 언젠가 나도 이른 아침 그런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야 될 수도 있겠네요? 학생 때도 이렇게 스트레스받으며 공부하는데, 어른이 되면 다들 그렇게 또 힘들게 사는 거예요? 그럼 언제 행복한 거야!"
아이의 말에 할 말이 없다. 집과 학교, 동네 울타리를 벗어나 큰 세상을 보고 온 아이는 자기가 본 세계가 마냥 신기하고 두렵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여유 있게 아침을 맞이하고 멋진 옷을 입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힙하게 출근하는 어른을 꿈꿨었나? 아니면 공부 스트레스 없는 어른의 세계는 대단한 것을 보상받고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나? '그냥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꾹 참았다. 아이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스스로 깨닫기를 기대해 본다. '학생 때가 제일 편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을 온전히 보내고 자연스럽게 어른의 세계로 넘어가길. 어른의 현실 세계를 체험학습한 아이는 그렇게 또 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