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15장 : 이성과 본능 2090.08.02

by 꿈꾸는나비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아직 아침은 오지 않았지만 누워 있는다고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천천히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다. 예정에 없이 찾아온 9명의 사람들은 아마 지금쯤 하나 둘 눈을 뜨고 있겠지. 부디 혼란 없이 이곳을 받아들이길. 잠이 들지 못하고 이 시간에 깨어있는 이유는 어제 뭍에서 온 사람들의 소지품 소독이 끝나고 확인하던 중 특이한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압축팩에 담긴 하얀 가루. 노인의 짐가방에서 발견된 물품 #13호. 선장에게 그게 뭔지 아냐고 물었지만 열어보면 알지 않겠냐며 귀찮은 듯 대꾸했다. 그럼 분석실에 보내겠다는 말에 그는 자기라면 그전에 맛보고 싶을 거라며 묘한 웃음을 짓고 뒤돌아 가버렸다. 선장의 태도가 늘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분통이 터지지만 그만큼 노련한 선장은 없어서 더 화가 난다. 그는 늘 말이 짧고 필요한 상황에서도 상대에게 쉽게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통제 안에 있는 듯하면서도 이런 상황을 만들어 혼란을 만든다. 이번 징계 회의 때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절차에 따라 흰색 가루를 분석실에 보냈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내방으로 가져왔다. 소독을 마친, 하얀 가루가 담긴 비닐 압축팩이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눈싸움이라도 하듯 압축팩을 바라보고 있자니 답답하다. 그러다 손을 뻗었다. ‘궁금하면 먹어보라고? 맛보고 싶을 거라고, 흥!’ 뻗었던 손을 다시 접는다. 아침이 오면 바로 분석실에 보내면 된다. 그러나 시선은 압축팩에 계속 고정되어 있다. 판도라의 상자일지도 몰라.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저게 어떤 반응을 일으키면? 그런데 호기심이 가만 두지 않는다. ‘맛보고 싶을 거라고? 환각 성분이 들어 있는 가루인가?’ 나도 모르게 서랍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뇌에서 빨간 불이 켜지지만 손은 아랑곳하지 않고 움직인다. 점점 손이 통제를 벗어난다. 뇌가 비명을 지르며 그만 칼을 내려놓으라고! 멈추라고 말하지만 손은 칼로 팩의 한구석을 찢었다. 흰 가루가 후루루 흘렀다. 지금 당장 물러서라고 뇌가 외쳐대도 소용이 없다. 손은 엄지와 검지로 그 가루를 집어 들었다. 손 끝에서 까끌까끌한 촉감이 느껴졌다. 멈춰! 당장! 뇌는 마지막 경고를 강하게 날린다. 그러나 손은 가루를 코앞으로 가져와 살펴보고 그대로 입안에 넣었다. 안돼! 그 순간 뇌에서 파파박 하는 불꽃이 일어났다. 손은 가루를 다시 한번 그리고 또 한 번 입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팩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가루를 끌어 모아 입안으로 넣었다. 뇌에서는 이제 가루를 입안에 더 털어 넣으라는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손은 굳어 버린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입안에 침이 고였다. 삼키고 싶지 않았다. 고인 침이 흘러나왔다. 너무 달콤했다. 행복했다. 그리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입안에서 솟구치는 침을 막기 힘들었지만 그건 눈물도 마찬가지였다. 뇌는 빨리 저 설탕을 입에 더 넣으라고 쉴 새 없이 명령을 내리고 있지만 손은 설탕을 묻힌 채 꿈쩍도 하지 않았고 침과 눈물은 흘러넘칠 뿐이었다. 보다 못해 다른 손이 울음소리가 새 나가지 않게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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