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기도 전에 '촉'이 왔죠. 불안한 마음에 바로 해봤는데 결과는 두줄... 지금까지 여러 번 진단키트를 사용해봤지만 진하게 두줄이 나온 경우는 처음이라 아이도 저도 너무 당황했죠. 두줄이 나오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슬금슬금 아이에게서 멀어지며 소리쳤죠.
"얼른 방으로 들어가~!"
저도 그날 기침이 나고 목이 아팠기에 혹시 몰라서 해봤는데 다행히 한 줄이더군요. 일단 아이는 그 시간부터 방에 격리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근처 병원에서 저와 아이는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는데 아이는 양성, 저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머릿속이 복잡해졌죠. 접종 안 한 아들 녀석이 제일 먼저 떠올랐고, 아이 담임 선생님한테 연락해야 하고, 남편과 가족들에게 연락해야 하고... 정신없이 약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낸 후 차근차근해야 할 일들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이는 방에서 자신의 현실을 마주 했겠죠. 당장 내일 있는 영어 수행평가를 못 보게 되었고, 몇 달간 준비한 프로젝트 발표는 하지도 못하게 생겼고, 기다리던 친구 생일날 선물도 못주게 되었으니 속이 상했겠죠. 방에서 들리는 아이의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기어이 기침 소리는 우는 소리로 바뀌었습니다. 평소라면 안고 달래 주었을 텐데 방문을 사이에 두고 아이를 위로했습니다.
"괜찮아,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괜찮아~."
방문 틈으로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가 한참 들렸습니다.
아이는 줌으로 학교 수업을 듣고는 오후 시간에 이것저것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뭐를 보는지 혼자 깔깔 웃는 소리도 간간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세끼 식사와 두 번의 간식과 기침에 좋은 배꿀차를 만들어 아이 방 앞에 차려두고 치우기를 반복하느라 바빴습니다. 아이는 방안에서의 격리를 잘 이겨내는 것 같았고요. 오히려 즐기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이 방앞에 아침을 차려놓고 아이에게 밥을 가지고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방문이 열리고는 아이는 차려진 아침식사를 가지로 방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나머지 가족들과 아침을 먹고 있는데 아이의 외침이 들렸습니다.
"나도 같이 먹고 싶어~! 나 혼자 밥 먹기 싫다고요!"
단 하루의 고립이 아이를 외롭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 식탁 자리에 핸드폰을 놓아두고 '줌'으로 비대면 아침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핸드폰 화면 속 아이는 기침이 심하다는 얘기와, 같이 얘기할 사람이 없어 외롭다는 얘기, 자기 말고 다른 반 친구도 코로나에 걸렸다는 얘기, 유튜브로 무한도전과 신서유기를 봤는데 너무 재밌었다 등 식사시간 내내 입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매일 아침 가족들과 비대면 식사를 함께 하며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저는 하루 세끼와 두 번의 간식을 일주일 내내 챙겼고요.
격리가 해제되던 날, 아이는 저를 꼭 끌어안더군요. 격리되어 있는 동안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웠나 봅니다. 티격태격하던 동생에게도 반가움을 전했죠. 코로나로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을 겁니다.
그리고 딱 일주일 후...
저와 아들이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아들과 저는 방에 격리된 채 심한 증상들로 일주일을 힘들게 견뎌야 했죠. 딸아이는 격리 해제 일주일 만에 다시 격리 아닌 격리로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남편이 일찍 출근하며 딸아이의 식사를 못 챙겼는데 아이는 오히려 저와 아들의 아침식사를 챙겨줬습니다. 울퉁불퉁 못생긴 주먹밥이었죠. 그리고 점심에는 입맛 없는 저를 위해 비빔국수와 계란탕을 끓여서 방앞에 놓아두었습니다. 매콤 달콤한 국수와 뜨근한 계란탕을 먹으며 아이에게 참 고마웠습니다. 이제 다 커서 엄마와 동생의 식사도 챙겨주는구나 싶었습니다. 일주일 격리를 먼저 경험하며 제가 하루 세끼 얼마나 열심히 챙겨줬는지 알고 있어서 그랬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붕어빵까지 사다 주었습니다. 딸아이의 그 마음이 참 고맙고 좋았습니다.
저와 아들이 격리 해제되던 날, 저는 딸아이를 꼭 안아줬습니다. 비록 코로나로 가족 모두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딸아이와 저를 좀 더 가깝게 만들어 준 것 같았습니다. 딸아이는 저와 떨어져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을 느꼈을 테고, 저는 딸아이의 재잘거림과 짜증과 유난스러움과 변덕이 없는 고요한 삶이 얼마나 심심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딸아이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마음도 훌쩍 자란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는 우리 몸뿐만 아니라 우리 사이에 항체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사춘기 딸과 갈등이 고조된다면 지금 느꼈던 서로에 대한 감정을 되새겨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힘들때는 거리두기를 다시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갈등의 외면이라기보다는 한 발자국 떨어져 나와 딸아이를 살펴볼 기회가 될 테니까요. 코로나를 극복했듯이 우리의 사춘기도 무사히 극복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