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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Jan 10. 2021

“너 왜 풀만 먹냐?”

할머니는 시금치를 먹어야 뽀빠이가 된다고 그랬는데

  수험생이었던 덕분에 채식으로 밥을 챙겨 먹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독서실과 집을 오가면서 밥을 먹다 보니   식단을 지키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시장이 가까이에 있던 것도 한 몫했었다. 



  파릇파릇한 제철 채소들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지갑이 열렸다. 바가지마다 소복이 쌓여있는 야채들을 보고 있으면 따스한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도라지, 배추들도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거기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따끈따끈한 두부는 항상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갓 나온 두부는 그냥 먹어도 맛있다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3년 동안 자취했던 경험도 한몫을 했다. 여동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얼렁뚱땅 했던 요리들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작고 소중한 한 줌의 정보였지만, 비건 블로그에 나와있는 레시피를 보며 하나하나 따라 해 보는 일도 너무 재미있었다. 처음은 이렇게 다 흥미로운 느낌인지, 아니면 초심자의 행운인지 모르게 그다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채식을 시작했던 3년 전만 해도 비건 시장이 오늘날처럼 활성화되지 않았었기에 지금처럼 제품 앞에 '비건'마크가 있지 않았다. 할랄 식품 매장이나, 외국 식료품을 파는 곳에 가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게 '비건'제품이었으니 말이다. 대형마트에 가서도 그저 상품 뒤에 적힌 성분명을 보고 비건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게 최선이었다. 


 시간을 들여 마트 하나를 통째로 뒤져도 먹을 수 있는 것은 손에 꼽았다. 그래서 보통은 주린 배만큼이나 턱없이 가벼운 장바구니를 들고 터벅터벅 돌아왔었다. 그렇지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았을 때의 희열이란, 긴 가뭄에 조금 내리는 단비도 반가운 것처럼 새로운 걸 하나 찾으면 그렇게 실없이 행복했다.  


  솔직히 그런 시간들이 부질없게 느껴질 때가 더 많았다. 이렇게 많은 물건들 중에서 내 것은 하나도 없는 느낌이라니. 돈이 있는데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니. 계산대에 줄을 서면서도 옆 사람의 가득 찬 쇼핑카트를 바라보기 바빴다. 


'나도 저렇게 먹을 수 있는데.'


양손 가득 채소를 사고 돌아오는 길에도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며칠 뒤 드디어 채식의 두 번째 관문이 나타났다. 


  바로 오래된 친구에게서 청첩장이 날아온 것이다. 이제야 가족들과의 식사자리가 겨우 편해졌는데 정말 산 넘어 산이었다. 한 달 뒤 친구의 결혼식 날짜를 달력에 체크해놓고선 꼭 가야 되는지를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 자리가 너무 어려웠다. 거기다 비건인 것을 알려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괜히 까다로운 사람으로 볼까 봐 걱정스럽기도 했다. 


  거기다 축하하러 먼 길을 가서 배고프게 채소만 먹고 올 순 없지 않은가. 집에만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렇다고 매번 사회생활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도 했으니 어떻게든 이 산을 잘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비건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갔을까. 당당하게 비건이라고 밝히면서? 아니면 아프다고 둘러대면서? 역시나 나만의 해답을 찾아야만 했다. 


  부모님을 설득하고 함께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가끔 보는 친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유난스럽게 바라볼 것만 같아서 그냥 숨기고 적당히 둘러댈까 싶었다. 어차피 이런 대소사는 드물기도 하고 서로 좋자고 만난 자리에서 불편해지긴 더욱 싫었다. 또 계속 이어질 만남들을 생각하면 솔직하는 게 답인가 싶기도 하고 그들에게 무작정 배려를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라 조금 더 어렵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건이라는 이유로 친구들과 만남을 갖지 못해 멀어진다면 당장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결혼식 뷔페에서 접시를 들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낯익은 샐러드에 환하게 미소가 걸렸다.  매일 보던 흔한 양상추 샐러드지만 여기서 보니 더 반갑다! 드레싱은 뭐가 들어갔는지 잘 모르기도 해서 제일 무난한 발사믹 식초를 골랐다. 요리하시는 분께 여쭤봐서 단호박 튀김도 올리고 떡과 유부와 밥으로만 이루어진 유부초밥을 얻었다. 행복하게 접시를 들고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물었다. 


 “너 왜 풀만 먹냐?”






  몇 번이나 이런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는지 모른다. 


  '친구가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 나에게 생각보다 관심이 없으면 어쩌지.'

  '먼저 비건이라고 말할까.'

  '친구가 상처 주는 말을 하면 어떡하지.'


  여러 가지 상황들을 굴려봤는데 아니 걸어가다가 물어올 줄이야. 잘 정리해서 조리 있게 말하려던 나의 연습은 물거품이 되었고 어버버 한 채로 무턱대고 말했다.





“비.. 비건이야…”




  자리에 앉은 후부터 계속해서 질문공세를 받았다. 언제부터 비건이었는지. 어떤 걸 먹는지. 몸은 괜찮은지. 그리고 친구들이 차례로 접시를 들고 돌아올 때마다 나는 이런 소리를 들었다. 


“야, 얘 비건 이래.”






  얼떨떨하게 몇 번을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대답을 반복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접시 한가득 샐러드가 올라가 있는 것이 나름 뿌듯하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편안했고 친구들도 신기해할 뿐이었다. 이제야 돌아보니 내가 당황하고 떨었던 만큼 그들도 서툴었으리라. 비건인 친구가 그들에게도 처음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 후로 한 가지 비건 삶에 대한 목표가 생겼다. 까다로운 사람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함께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 그냥 옆집에 사는 어떤 비건, 비건인 친구, 비건 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동료로 말이다. 


  나부터가 그런 삶을 지향하면 가족, 친구들 그리고 사회에도 자연스레 그런 변화가 스며들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 삶의 숙제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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