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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Jan 12. 2021

비건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내 안의 편견과 싸우는 일


  아홉 수의 겨울인지 그 후로도 유난히 청첩장이 많이 날아왔다.
 


  처음 시작이 어려웠지 이제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비건이라 이야기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한다. 대부분의 반응은 놀랍지만 또 그렇게 놀랍지 않은 느낌이다. 더러는 자기 친구도 그렇다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자신의 여동생도 갑자기 알레르기로 인해서 채식을 한다는 이도 있었다. 




  한 번은 부산에 2박 3일로 열리는 창업 캠프에 참석하러 간 적이 있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있었고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도 계셨던 자리였다. 


  호텔에서 강의를 주최한 덕분에 일정 내내 호텔 뷔페를 먹었다. 매번 결혼식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긴 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자리에서 뷔페만큼 좋은 선택지는 없기도 했고 말이다. 


  우리는 자연스레 조별로 함께 밥을 먹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밥을 함께 해야 식구가 된다는 말이 있듯 확연히 다른 두 명 아주머니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화려한 빨간 옷에 현란한 액세서리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하시던 아주머니는 고기를 먹어야 건강하다는 말을 매 끼니마다 하셨다.  또 다른 한 분은 엄청 조용한 목소리로 다가와 자기도 고양이를 키워서 채식에 관심이 많다고 하시며 유심히 내 식사를 살펴보곤 하셨다.


 불편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런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좋았다. 왠지 분위기가 명절을 맞은 듯했다. 어른들의 화려한 관심 속에서 밥을 먹게 되다니 말이다.




  하루가 지나자 50명이 넘는 팀원들 사이에 내가 비건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은 없었다. 이제는 내 이름이나 비건이라는 이야기나 나에게는 비슷하게 느껴졌으니까. 몇 달 간의 특훈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식사 시간이 되자 왠지 주변이 웅성웅성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정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이 먹으려면 빨리 움직여야 했다. 김밥에 있는 햄과 맛살도 빼야 하고 주방장님께 드레싱도 물어봐야 하고 정신이 없었다.  


'무슨 일 있나?'


  처음에는 나를 향한 눈길을 부정했었다. 내가 잘못 봤겠거니 하고 넘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힐끗힐끗 쳐다보고 지나가는 친구도 있었고 어떤 걸 먹는지 궁금하다고 물어오는 아저씨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자꾸만 다른 이들의 시선에 신경이 곤두섰다. 식당 끝에서 조그맣게 수군거리는 소리에도 혹시 내 이야기가 아닐까 하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 시간 동안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제일 나이가 지긋하셨던 86세 할아버지께서 한 마디 하고 지나가셨다.






“파이팅!”



 나를 향한 시선들은 알고 보니 응원의 눈초리였다. 혼자 소외될까 봐, 욕을 먹을까 봐 끙끙 앓고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들도 나도 서로 다른 생활에 다가가기 조심스러웠을 뿐이었다. 


‘꺼내놓고 나니 생각보다 별거 아닌 일이었잖아.’




 고양이를 키우시던 아주머니는 메뉴가 바뀔 때마다 이것은 먹어도 괜찮은 지 옆에서 계속 물어보며 이것저것 권해주셨다. 딸 같은 친구라 마음이 자꾸 쓰이신다며 여정 내내 곁에 함께 해주셨다. 


  어찌나 걱정을 하시던지 마주칠 때마다 밥을 더 얹어주지 못해 안달이셨다.  과일이라도 많이 먹으라며 챙겨주셨고 함께했던 언니들도 캠프가 끝날 무렵 모아놓은 쌀과자를 몽땅 내 가방에 넣어주었다.


  비건이 까다롭고 예민하다는 생각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환대를 받을 리 없었을 테니까. 물론 응원하는 이들 뒷면에 불편해하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비건이 되기 전에 누구보다 세상에 편협했던 사람은 바로 내가 아니었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세상은 평범하지 않으면, 주류에 스며들지 않으면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온갖 비난을 쏟아내고 비판을 하는 곳인 줄로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시간 수험생으로 살아온 내게는 인터넷 세상이 전부였었다. 익명의 방패를 앞세워 온갖 욕설과 비판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세상을 배웠으니 무섭고 두려운 것이 당연했다. 


  누군가의 다른 가치관, 정치색, 인종, 성 정체성들은 쉽게 먹잇감이 되는 것을 보며 참 많이 힘들었었다. 강자가 약자를, 약자가 그보다 더 약자를 공격하는 일은 얼마나 빈번한지 뉴스를 틀기가 무서웠던 적도 있었다. 험한 이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더 날을 뾰족뾰족하게 세워야 하는지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하는지 가늠할 수 조차 없어 무력함까지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조차도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지 않았던가. 지난날을 반성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마터면 이렇게 따뜻한 세상을 모르고 살아갈 뻔했다. 아니 평범함이라는 그늘 속에 숨어 평생 나를 감추고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든 나를 공격할 줄로만 알았던 곳이 실은 따스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조금 더 세상 밖으로 나아가고 싶어졌다. 


  갇혀 있는 건 아무래도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는 걸 이제라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받은 만큼 따스한 손길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정말 좋겠다는 소망도 함께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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