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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Jan 24. 2021

대한민국에 콩고기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을까

고기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새로운 맛이 필요했어요

  ‘맛 권태기’가 찾아왔다. 


  그 말은 즉슨 너무 비슷한 맛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간장, 된장, 고추장 또 다음은 고추장, 간장, 된장. 마치 식사, 커피, 영화가 계속 반복되는 지루한 데이트 같은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할 줄 아는 요리는 늘어갔지만 입이 만족하지 않는 순간도 함께 증가했다. 입은 계속해서 새로운 맛을 원하고 더 큰 자극과 기쁨을 원했다. 다시금 비건 인생에 큰 난관이 봉착했다. 음식들이 질리기 시작한 것이다. 




  흔하게 먹을 수 있는 나물로는 시금치나물, 깻잎나물, 콩나물 무침, 취나물 아니면 제사상에 흔히 올라오는 도라지 나물이나 고사리나물도 있다. 문제는 나물을 무쳐놓으면 어떤 채소가 기본이냐에 따라 다소 맛에 차이는 있지만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 있었다. 


 요새는 요리 에센스 연두라고 샘표식품에서 나온 제품이 있다. 콩을 발효해서 만든 간장 양념이 있는데 이걸로 대부분의 나물은 간단히 조미를 마친다. 나물뿐만이 아니다. 콩나물국, 미역국, 된장국도 약간의 정체성을 더해줄 국간장, 된장, 들기름 정도에 연두 에센스를 넣어주면 간단하게 음식이 완성된다. 요리는 간편해지고 수월해졌지만 채소로만 할 수 있는 요리의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언젠가부터 밥을 먹는 순간이 그리 기대되지 않았다. 덩달아 비건 인생뿐이 아닌 나의 삶에도 권태기가 오는 듯싶었다.




  첫 시작은 닭 없는 닭갈비였다. 


  함께 비건을 하고 있는 친구가 지나가는 말로 닭갈비가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건네자마자 셋이서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런데 누가 뭐래도 닭갈비의 주인공은 닭고기가 아니던가. 앙고 없는 찐빵 같은 느낌이 되려나 싶었지만 일단 시도해보기로 했다. ‘닭갈비 황금 레시피’를 딱 검색하고 집에 있는 재료로 충분히 가능한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감자, 고구마, 양배추, 양파, 대파 그리고 양념들로 그야말로 입을 속이는 마법의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
  
정주영 회장님의 명언을 잠시 빌려본다. 실패할 것만 같던 시도는 아주 성공적으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막국수까지 곁들여 아주 근사한 상을 차리고 그야말로 걸신이 들린 것처럼 계속해서 먹었다. 셋이서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은 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먹다가 쉬고 먹다가 쉬고를 반복하며 마무리 볶음밥까지 아주 멋진 식사를 마쳤다. 


  드디어 우리 집에 새로운 비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부산에 갔을 때 한 비건 음식점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서면 번화가 끝자리 허름한 빌딩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던 곳이었다. 한참을 헥헥거리며 올라간 4층 건물 끝에 아늑한 분위기와 여러 외국인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내고 있던 가게였다.


 메뉴판을 보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콩고기 제육볶음과 쌈채소를 골랐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못하게 될까 봐 비빔밥까지 야무지게 시켜놓고 한가롭게 기다렸다. 시켜놓고도 솔직히 아무런 기대도 되지 않았다. 흔한 콩고기에 양념장 맛이 아닐까 했는데 아뿔싸, 채식을 빼고도 인생을 통틀어 제일 맛있는 밥상이었다. 



  화려한 불맛에 적당히 매콤한 양념까지 너무 맛있어서 먹다 말고 친구에게 쌈 싸 먹는 영상을 보낼 정도였다. 비빔밥만 먹었더라면 인생에 큰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흘려보낸 셈이 될 뻔했다. 콩고기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엎어준 그런 날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아빠를 따라 사찰음식점에 갔던 적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난생처음 콩고기를 접했었다. 생긴 것은 갈색으로 꼭 고기처럼 생겨서 맛은 질기고 특유의 독특한 향이 있었다. 첫인상은 그렇게 썩 좋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걸 먹고 건강할 바엔 차라리 고기를 먹고 아프고 말지 하던 생각이 난다. 


  스님들만 먹는 그런 건 줄 알고 지나온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자의로 콩고기를 찾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때 별로 맛이 없었다는 기억이 강해서인지 근처도 가고 싶지 않았었다.


  부산에서 돌아와서도 한동안 콩고기 제육볶음 앓이를 했다. 그때 먹었던 맛을 생각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판용 콩고기들을 검색해보았다. 그리고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짜파게티에 들어있던 갈색 고기가 콩고기였어?"


 면을 다 먹고도 접시에 굴러다니는 갈색의 형태가 고기인 줄 알고 잘 되지도 않은 젓가락질로 열심히 집어먹었었는데 충격이었다. 왜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을까. 콩고기와 나 사이의 멀기만 했던 심리적 거리가 한순간에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여러 회사의 콩고기 제품들을 사 보기 시작했다. 이미 모든 양념까지 다 되어있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던 레토르트 식품으로 시작해서 건조 콩단백까지 가리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계속 새로운 요리들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소고기 없는 소고기 뭇국, 감자로만 만든 진짜 감자탕, 여름엔 한약을 넣고 푹 끓인 닭 없는 버섯 삼계탕까지. 


  거기다 버섯 치킨을 튀기기도 하고 가지로 탕수육을 만들기도 했다. 콩고기 제품 중 제일 좋아하는 건 '콩 살로만'이라는 제품이었다. 찜닭, 닭갈비, 닭볶음탕 등 닭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식품은 이것이 유일했다. 여전히 가끔 콩고기 특유의 향이 익숙하진 않지만 다양한 식감을 위해서 이것저것 요리를 해보면서 최적의 맛을 찾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맛이 삶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콩고기보다 밀고기가 내 입맛에 더 맞다는 것도 포함해서 비건 생활에 새로운 조각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알던 맛은 실은 양념이 8할 아니 10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는 사실도 함께였다. 의식주에 만족을 느끼기 시작하니 내 삶도 원래대로 돌아온 듯했다. 밥을 먹는 시간이 더 이상 지루하지 않았고 무엇을 먹을까 하는 기대로 차오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삼겹살을 대체할 만한 제품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 오는 날의 부침개만으로는 2%가 모자란 느낌이 든달까. 하지만 집 앞 스타벅스에서도 비건 함박스테이크와 파스타를 가볍게 시켜 먹을 수 있게 된 걸 보면 고지가 머지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훗날의 나는 비건 삼겹살을 먹으며 또 신나게 주절주절 떠들고 있을지 모른다. 그날을 위해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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