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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Jan 31. 2021

가끔 배달음식이 미치도록 그립다

여전히 배달 어플을 뒤지는 취미에 대하여


 우리 집 맞은편에는 치킨집이 하나 있다. 


  정말 문을 열고 “사장님! 여기 배달이요!” 한 마디만 외치면 달려올 것 같은 거리에서 때론 주황색의 따스한 불빛으로, 오늘은 또 고소한 치킨 냄새로 나를 유혹하곤 한다. 


  그림의 떡이란 이런 걸까. 그렇지만 치킨이 먹고 싶다가도 금방 정신을 차리곤 한다. 고기가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바삭한 튀김 조각들이 먹고 싶다는 걸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배가 고프고 귀찮을 때는 건너편 치킨집이 최고의 유혹으로 다가온다. 간편하게 배달을 시켜먹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요즘이기도 하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요리를 한다는 건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은 요리가 문제가 아니다. 축축 쳐지는 그런 날에는 누구나 그냥 소파에 덩그러니 누워 하루 종일 뒹구는 상상을 해보지 않는가. 현실은 겨우겨우 마음을 달래서 요리를 하려고 일어나면 설상가상으로 텅 비어버린 냉장고를 마주해야 한다.


 하…...


 밥 한 끼를 먹기 위해서는 먼저 장을 봐야 하고 재료 손질도 해야 하고 냉장고도 정리해야 하니 집안일이 수십 개는 늘어나는 마법의 시간이 된다. 엄마는 왜 한 번도 힘들다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전화를 들어 투정을 부리다가도 "다들 그렇게 살아서 힘든 줄 몰랐지."라는 한 마디에 괜히 얻어먹기만 했던 지난날이 미안해지기도 했다.


  일을 끝내고 맥주 한 잔에 피자, 족발, 치킨 뭐 그런 것들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요새는 배달도 얼마나 잘되는지 밥이면 밥, 국이면 국 거기다 사이드 메뉴까지 근사하게 차려놓고 먹을 텐데. 왜 나에게만 해당 사항이 없는 건지 이럴 때면 비건으로 사는 삶이 조금 후회스럽기도 했다.




 서울에는 비건 식당에서도 음식 배달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샐러드는 기본이고 비건 치킨도 있고 비건 수제버거도 있다고 한다. 그곳은 비건에게 천국의 땅이 아닌가. 사람이 많은 곳을 번잡해하면서도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것이 되었다.


  공기도 좋고 사람도 적고 비건 음식점도 가까이에 있어 배달도 되는 그런 완벽한 환경은 없을까.





  작년 2월, 롯데리아에서 식물성 버거 테스트를 시작했다. 물론 잠실 광장점, 잠실 롯데월드 몰 지하, 스카이31의 롯데리아 매장 3군데에서만 진행되는 일이었지만 '이건 꼭 가야 해!'라고 마음이 외치는 듯했다.


 공식적인 출시를 앞두고 있었는지 정말 테스트였는지는 모르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기나긴 왕복 3시간을 다녀오게 되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돌아갈까 백만번은 고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생에 최초의 비건 패스트푸드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더군다나 정말 시판이 될 지도 의문이었고 말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구석진 자리에 앉아 ‘어썸 버거’를 받았을 때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다. 흔히 알던 그 불고기버거의 형태였고 맛도, 질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한 입을 베어 물면 육즙이 흘러나올 것 같은 느낌의 패티와 달달한 소스 그리고 양상추까지. 돌아오는 길이 멀지 않았다면 분명 포장을 해왔을 것이다.  


  지금은 핸드폰으로 3분이면 가까운 매장에서 ‘어썸 버거’를 시킬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단종되었는지 이름으로만 남아있는 제품이 되었다. 지금은 롯데리아에서 나온 순식물성 버거인 '미라클 버거' 정도는 집에서 간편히 시켜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연달아 서브웨이에서도 시즌 한정으로 비건 샌드위치가 나왔었다. 잠깐이었지만 이렇게 채식 시장이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어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마음껏 누릴 수 있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 처음은 항상 혼란스러웠다.  나의 비건 생활이 그랬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이 그랬다. 서툰 집안일도 사회생활만큼이나 버겁게 느껴졌고 그렇게 즐겨하던 게임도 더 이상 즐겁지 않다고 느낄 때 어른이 되었다고 실감했다. 더불어 삶에 대한 어떤 허탈함이 있었다.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대신에 내놓아야만 하는 어떤 즐거움과 소소한 행복들이 생각보다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러한 행복이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매번 어떤 비건 제품이 나올까 하는 호기심과 궁금함으로 인터넷을 뒤적이는 시간이 그 자리를 대신했으니 말이다. 새로 생긴 비건 식당을 가보는 재미가 생겼고 신제품이 나오는 날짜를 기다리며 시간이 가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기도 하다. 비건이 아니었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소소한 즐거움이 아닐까.


고기대신 브랜드의 비건 신상품들




 수험생 때는 시간이 가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시험 날이 다가오는 것도 결과를 마주해야 하는 것도 미루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가는 게 정말 인생일까 고민하던 그런 날들이었다. 그마저도 너무 막막한 날은 독서실 옥상에 올라 하염없이 하늘을 바라보다 내려오곤 하였다. 때마침 걸려오는 아빠의 전화에 애써 웃어 보이며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넨 채로 말이다.


  불안함을 인식하는 것조차 나의 패배가 될까 두려웠던 시간 속에 나는 얼마나 속으로 곪아갔던 것일까. 



  3년이 지난 지금은 과거와 너무나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명상을 통해 더 이상 스스로의 감정을 무시하며 살아가지 않게 되었고 비건을 시작하며 새로운 세상 속을 탐험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즐기기 시작했다. 


  비건 신제품 소식에 친구들과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큰돈을 들여 샀던 비건 빵이 맛이 없어 난리를 피울 때도 있다. 자주 가는 식당에서는 고기를 못 먹는 불쌍한(?) 친구로 소문이 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하고 가끔은 비건 신제품에 대한 품평회로 투잡을 뛰기도 한다. 


  그러나 불쑥불쑥 수험생이던 과거의 내가 나타나 내일은 당연히 어두울 거라고 말할 때도 있다. 그런 나의 목소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날들도 당연히 있었다. 그럴 때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과거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어 진다. 지난날들을 잘 견뎌왔기에 오늘의 내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건네면서 말이다. 


 더더욱 과거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사라져만 간다. 앞으로의 나날들도 새로운 일과 새로운 경험들이 가득해지리라는 확신이 하나 둘 생겨가고 있지 않은가. 


 비건을 하고 나의 삶은 더 희망으로 차올랐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는 그대로 과거에 두려고 노력 중이다. 그때 충분히 즐거웠고 오늘의 나도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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