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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Jan 17. 2021

단무지 반찬이 비건은 아니잖아

이것도 채식이라면 채식이지만

 생각해보면 비건이 되기 전에도 비슷한 일상이었다. 


  맛있는 걸 먹지 못하면 하루가 시무룩해지는 병이 있었달까. 아침에 눈을 뜨면 점심메뉴를 고민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 메뉴를 결정하는 그런 평범한 현대인이었다.(라고 주장해본다.)


  무한으로 이어지는 단짠단짠의 향연과 마무리 야식까지 먹고 나면 하루를 알차게 보낸 느낌이었다. 잠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 블로그와 인스타를 오가며 내일 갈 식당을 고르는 것도 하나의 놀이였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는 사실이 오늘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희망이 되어주었다. 


  긴 수험생활을 버티던 힘도 단연 음식이었다. 학교 식당의 메뉴판을 보며 점심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가끔은 스터디 언니의 차를 얻어 타고 가까운 맛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후식으로 버블이 들어간 밀크티를 손에 쥔다면 정말 환상의 조합이었다.




  비건으로 1년 차는 아주 순조롭게 지나갔다.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발을 들인 만큼 모든 것이 재미있고 즐겁게 느껴졌다. 생전 모르고 살아갈 뻔했던 다양한 풀의 세계를 알아가는 것도 너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세발나물이라고 불리는 갯나물이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식자재마트였다. 마치 신상 옷들을 둘러보는 사람처럼 야채 코너를 기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그때 한편에 수북이 쌓인 풀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생긴 모양은 솔잎이랑 비슷해 보이기도 했고 화단에서나 자랄 법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런데 바닷가 근처에서 자라는 채소라니.  


 알 수 없는 식재료를 만났을 땐 일단 핸드폰을 들고 검색해 본다. 어떤 조미료가 들어가는지를 살펴보고 맛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예상을 보란 듯이 빗겨나간 채소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이 세발나물이었다. 


  보통 나물은 비슷한 양념 맛이 난다. 간장에 참기름 맛이랄까. 그런데 세발나물은 정말 달랐다. 채소 특유의 향과 맛이 어우러지는데 식감도 특이했고 바다 짠맛이 나는 나물은 진짜 처음이었다. 엄마는 맛있다고 했지만 올해 또 마주하게 된다면 장바구니에 넣을 자신은 없다. 억센 부분을 떼어내는 손질이 매우 번거로웠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그런지 여전히 어렵게만 느껴진다.




  주변에 비건 맛집이 있으면 정말 천국이겠지만 내가 살았던 고향에는 그냥 비건 옵션이 되는 음식점도 없었다. 맛으로 유명한 고장에 떨어진 비건이라니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이라면 이런 느낌일까 싶기도 했다. 떠나온 지 1년 만에 유명한 비건 빵집도 여러 개 생겼다고는 들었지만 가끔 인터넷으로 쌀 식빵을 사 먹는 게 최대의 군것질이었다. 


  대신에 서울을 오가면서 맛집을 다녔다. 멀미하면서도 교통비를 아껴 맛있는 것을 먹겠다고 편도로 4시간 걸리는 버스를 타고 갔을 정도였다.






  덕분에 29년간 살았던 고향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서울 사람들은 어찌 그리 빛이 날까. 머리카락만 잘라도 모두가 알아보는 시골스러운 동네에서 형형색색 물들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걷는 이들이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모른다. 


  그들의 삶을 보며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 생각을 했건만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곳곳에 있는 다양한 비건 음식점들도 한 몫했다. 고향을 떠나 위쪽으로 올라오면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리란 확신이 생겼다.


  무작정 독립을 선언하고 4일 만에 짐을 쌌다. 수험생을 그만둔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수원에 사는 친구 집으로 일단 들어오게 되었는데 지하철로 서울에 갈 수 있다는 게 정말 혁명이었다. 이사 온 뒤로 3일에 한 번은 맛집을 찾아다녔다. 대부분은 혼자였고 또 가끔은 명상을 배우며 만난 이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처음 먹어본 미역 콩국수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은 그런 날이었다. 서울 끝자락에 비건 젤라토를 파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친구와 2박 3일로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꼭 들려야지 다짐하였건만 야속하게 눈이 펑펑 내렸다. 거기다 생각보다 길어진 일정에 몸도 마음도 그저 눕고만 싶었다. 축축하게 땅으로 꺼지려는 몸을 이끌고 낯선 골목길을 20분쯤 헤맸을까. 갑자기 딱 나타난 가게에서 광명이 비치는 줄 알았다.



  “사장님 진짜 감사합니다. 대박이예요!”


  친구와 끊임없이 젤라토를 먹으면서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가게에서만 빛이 나는 것이 아니라 사장님에게서도 후광이 보였다. 


  세상에. 이런 젤라토를 만들게 된 연유가 궁금해 여쭤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까지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으로 먹어본 비건 젤라토가 너무 맛있었던 기억에 이렇게 멋진 사람을 알게 된 축복까지 덤으로 얻어온 날이었다. 


  물론 갑작스러운 추위와 싸우며 3시간에 걸쳐 돌아가는 길은 눈물만 한 바가지이긴 했지만 말이다.




  놀아본 사람이 잘 논다는 말이 있다. 


  바깥에서 맛있는 외식을 많이 하다 보니 집에서도 맛있는 음식들이 먹고 싶었다. 1년 동안은 흔히 말하는 풀들과 권태기 없이 잘 지내왔는데. 혀가 바깥 음식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던 게 문제일까. 방 안에 누워 먹방을 보면서 한숨을 쉬기도 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냐.'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서는 김밥용 단무지를 놓고 밥을 먹었다. 친구들 모두 요리와는 쇄국정책을 펼치기라도 한 듯 이것이 최선이었다.  같이 사는 친구들 중에서도 그나마 요리에 우호적인 사람은 나뿐이었다. 정말 맛있는 특식이 유부초밥일 정도였으니 알만 하지 않은가. 


무려 자르지도 않은 김밥용 단무지...


  지금은 채식 라면도 시중에 많이 나와있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거기다 비싸기도 하고 큰맘 먹고 사서 끓여보면 예상했던 맛은 아니었다. 뭔가 라면과 비슷한 다른 음식을 먹는 듯했다.


  얼마쯤 지나자 이렇게 살다가는 굶어 죽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냥 먹고 싶은 것들을 직접 해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식당이나, 요리 블로그에 올라온 레시피나 같은 사람이 만드는 건데 나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거기다 요리를 해준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매일같이 먹는 간장두부조림이 질린 것도 한 몫했다. 


  본가에서 여러 레시피를 따라 재미있게 요리를 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생존이 걸렸다.'  




   누군가는 뭐 그렇게 대단한 다짐까지 할 일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3명 분의 밥상과 건강을 책임져야 한다는 어떤 소명의식이 있었다.  그런 연유로 지금까지 이 집의 영양사이자 요리사 자리를 맡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 셋은 비건을 지향하는 관계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요리하는 과정은 번거롭기도 하고 친구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될 때도 많다. 장을 보는데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며 남은 재료들을 고려해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심지어 그냥 한 끼를 거르고 싶을 정도로 귀찮을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오롯이 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2년 전부터 명상을 시작하고 배운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딱 한 문장이었다.


  ‘나의 깨끗한 마음을 따르는 것.’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지나온 수험생활은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으니까. 불확실한 과정 속에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것도 건강한 마음일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마음이 원하는 비건 생활을 나의 손으로 꾸려가는 지금, 그래서 나의 비건 생활이 행복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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