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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Jan 10. 2021

고기를 끊는 게 겨우 시작이었다니

신념없는 비건도 괜찮다면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vegan을 검색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엄격한 채식주의자(고기는 물론 우유, 달걀도 먹지 않음. 어떤 이들은 실크나 가죽같이 동물에게서 원료를 얻는 제품도 사용하지 않음.”


 모니터를 황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던 것 같다.


  ‘아, 미쳤네.’







  여느 때처럼 공부를 하고 있던 날이었다. 막연하게 비건이 되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며칠을 보낸 점심 무렵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것처럼 패기롭게 굴었던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마치 초등학생 때 겪었던 여름날의 방학숙제처럼 재미있는 일들을 하면서 결정을 계속해서 뒤로 미루는 게 최선이었다.


 더는 안 되겠어서 심호흡을 하고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켰다. ‘비건은 동물성 성분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가 내가 가지고 있던 정보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비건’이라고 했을 때는 그냥 채식의 한 종류로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이런 쪽으로는 무지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알고 보니 식습관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활 방식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가치관의 뿌리였다. 검색창을 켜놓고 한참을 고민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았고 삶에 어떠한 변화가 제약으로 찾아올지 모르기에 섣불리 다가가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더 궁금해졌다. 비건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은 무슨 이유로 비건이 되길 선언했는지. 또는 어려움은 없는지 좋은 점은 무엇인지. 알아야만 납득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비건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삶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했고 어떻게 비건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와 같은 어떤 신념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자료는 할리우드 배우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무래도 서구문화에서는 채식주의자가 하나의 다양성의 형태로 자리 잡았기에 훨씬 자료도 많은 듯 보였다. 


  한국에서는 '질병 치유'의 목적의 채식이 많았다. 대부분 채식을 검색하면 나오는 암을 극복하고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들. 아니면 환자들의 식사 고민이 대부분이었다. 채식에 대한 논의조차 아직 활발하지 않아서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간간히 채식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이 보였다. 나름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구나 싶어 확장의 가능성을 보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과 삶을 보았다. 환경 보호를 위해서 시작한 사람,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자신의 반려동물을 위해서 선택한 사람 그리고 우리 모두가 공존하는 미래를 위해 소신을 지키는 이도 있었다. 


  그들의 삶은 시작부터 뿌리가 단단한 것 같았다. 가느다란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내가 그들에게 누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목적, 어떤 이유, 어떤 신념 앞에 내가 가진 아주 작은 호기심으로 이 삶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어렴풋이 ‘채식주의자’라는 명칭을 달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정말 사명감 있게 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불안함도 함께였다. 




  생각만 하고 있으니 더 머리가 아팠다. 산더미처럼 밀린 방학숙제도 막상 시작하면 울면서라도 끝을 내지 않았던가. 정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신념도 목적도 아무것도 세우지 않은 채로 그냥 하나씩 줄여보기로 했다.


 더 고민해봐야 특별한 것이 나올 리도 만무했고 일단 더 찾아볼 자료도 없었다. 유명한 비건 블로그 몇 개를 구독하는 것을 끝으로 이 세계에 입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도 없는 항해가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순항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어이없지만 말이다.




  사실 머리 아팠던 걱정은 마음을 먹는 순간과 함께 사라졌다. 생각보다 단순하고 쉬운 결정이었다. 


  그저 처음 입문하는 자로서 넘어야 할 산이 높아 보였을 뿐이었다. 꼭 원대한 포부 하나 없이도 비건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적고 싶었다.  


  비건이라는 소개를 할 때마다 어떤 이유가 있어 시작했는지 지겹게 들었던 문제이기도 했지만. 으리으리한 어떤 소신과 특별한 계기를 듣길 원하는 이들 앞에 ‘그냥’이라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이런 이단아 하나쯤 존재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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