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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Jan 01. 2021

그래도 단백질을 먹어야지

새하얗게 믿었던 우유의 까만 배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이렇게 3대 필수 영양소라고 지칭되는 것들이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과학 시간마다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이야기가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가 될 줄이야. 


  학창 시절에는 영양사분이 잘 짜준 식단으로 먹기만 하면 되었고 집에서는 엄마, 할머니께서 정성으로 만들어주신 음식을 잘 먹기만 하면 되었다. 식당에서는 아주머니가 내어주신 반찬을 남김없이 먹는 것으로 건강을 챙기곤 했었다.  그러니 골고루, 맛있게 편식하지 말고 잘 먹으면 건강하다는 말만 들었지 무엇을 어떻게 먹으라는 건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셈이었다. 


  그나마 식품에 대해서 아는 것은 교양 과목으로 겨우 스쳐 지나가며 들었던 식품영양학 정도였다. 그 마저도 10년 전 이야기에 생각나는 건 교수님이 해리포터의 엄브릿지 교수를 닮았다는 것뿐, 솔직히 음식에 대해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맛집이나, 아니면 사진 찍기 좋은 맛집이나, 그것도 아니면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핫플레이스 맛집이나. 머릿속에는 먹는 것 = 맛있는 것 = 건강이라는 공식만이 있는 듯했다.


  그래, 탄수화물이 소화가 되면 당이 되고... 단백질이 소화되면 아미노산... 지방 분해 효소는 리파아제... 생물학과 학생으로서 배워왔던 모든 소화 과정 메커니즘을 뛰어넘는 난제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뭘 먹고사나?’ 


이렇게 중요한 식생활에 대한 해답을 그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었다. 




  단백질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코 닭가슴살이었다. 아니면 달걀이거나 두부, 콩 정도. 그럼 두부를 얼마나 먹어야 되는 거지? 한 모? 한 판?  


  인터넷에 검색을 해봐도 다들 이야기가 달랐다. 누구는 필수적으로 고기를 먹어야 된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구는 채소만으로도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다고 하니 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한동안 밥상에 두부가 올라왔다. 얼마를 먹어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먹는 것보단 낫겠지 싶어서란 마음에서였다. 간장에 찍어먹거나 김에 싸 먹거나 하는 식으로 하루에 두부 한 모는 꼭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채식에 대한 정보를 한참을 찾아보다가도 내 삶이 잘못된 길로 굴러가고 있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뭔가 내 삶에 큰 변화가 생길 거라는 직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나고 보니 정말 큰 변화였지만. 아무튼 그래서인지 당장 무언가 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처럼 한동안 계속 진지해지곤 했다. 


  '아니 진짜 누가 뭘 먹으라고 알려주면 좋겠다.' 




  채식을 해야겠다는 굳은 다짐 앞에서도 계속 불안했다. 스스로 내 몸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고기를 먹어야 튼튼해진다.'라는 명제와 싸우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스스로 납득이 가능할까. 어떤 식으로 먹어야 건강해질까. 내 삶이 제대로 가고 있음을 자신할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또 하나, 나의 채식 뒤로는 죄책감이 따라왔다. 밥을 먹을 때마다 나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부모님의 모습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잡식성으로 태어난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송곳니가 육식의 증거라던데 혹시 내가 인류의 근본적인 도리를 거스르고 있는 건 아냐?' 하는 엉뚱한 고민들도 함께였다. 그나마 식물성 원료로 만든 단백질 파우더를  검은콩 두유에 섞어 아침마다 마시는 것이 나름의 위안이었다. 부모님의 걱정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고 말이다.


  거기다 우리 집에는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있었다. 바로 평생을 함께 살아온 외할머니였다. 나이가 서른이 되어가도록 할머니의 눈에는 그저 갓난아기로 남아 있었는지 편찮으신 몸을 하고도 항상 나와 동생을 먼저 걱정하시던 분이셨다. 고기를 안 먹겠다는 말이 할머니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로 들렸는지 매번 다시 묻곤 하셨다. 


"어디가 아프냐?" 


  어릴 때도 인스턴트, 가공식품은 절대 입에 못 대게 하셨던 분이었다. 어쩌다 한 번 라면을 끓여주실 때면 항상 면을 먼저 삶아서 기름기를 물에 한 번 씻어내고 수프를 반은 덜어 끓여주실 만큼 매번 나와 동생의 건강을 염려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볼멘소리로 하던 반찬 투정 한 번에 냉장고에 숨겨 놓았던 햄이 밥상에 올라왔다. 굶는 것 앞에서는 항상 모든 것이 예외가 된다. 고등학생 때도 일어나는 순간부터 집을 나설 때까지 김에 밥을 싸서 입에 넣어주시곤 하셨다. 그렇게 손녀를 걱정하는 따스한 마음을 알기에 숟가락 위로 얹어주시는 고기반찬들을 내려놓기가 힘이 들었다. 




  “그래도 단백질을 먹어야지.”


   첫 시작은 놀랍게도 우리 아빠였다. 영양학 쪽에 관심이 많으셨던 분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하루는 같이 밥을 먹는 동안 계속해서 단백질의 소화 과정에 대해 풀어놓으셨다. 결론은 필수 아미노산을 위해서 당연히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다음 날은 채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고 오셨다. 스님도 병에 걸린다는 것, 채식하고 암에 걸렸다는 뭐 그런 뉘앙스의 사례들을 들어 걱정스러운 마음을 보여주셨다. 그때만 해도 나조차 채식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나도 더 이상 흔들리고만 있을 수 없어서 채식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말이 공부지 솔직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인터넷에 채식을 검색해서 나오는 자료들을 읽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자연식물식으로 유명한 “이레네오”라는 유튜버 영상들을 추천받았다. 


  채식도 생소한데 자연식물식이라니. 과일을 중심으로 식단을 짜고 나머지 부분을 야채들로 채우는 방식이었다. 과일을 많이 먹으면 당뇨를 조심하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이런 관념들을 깨부수기에 좋았었다. (물론 건강한 사람 기준으로, 당이 높은 사람에게는 예외이다.)


  계속해서 찾다 보니 어디에도 누구에게나 딱 들어맞는 보편적인 의학적 지식은 없었다. 그저 본인의 몸 상태에 맞게 조절해서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과일이 당을 올리는 것은 맞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고기 섭취로 인한 인슐린 저항성의 증가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나름 분자생물학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물가물한 지식만이 남아서 스스로 납득할 만한 정보를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다음으로는 채식 의사로 알려진 “존 맥두걸” 박사의 책을 쌓아두고 읽었다. 의사로서 경험했던 많은 사례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는 책이었다.


 “소에서 나온 우유 및 유제품을 자주 먹는 사람들은, 노년에 골다공증 및 엉덩이 골절에 걸릴 확률이 월등히 높다.”

   건강식품으로 알려졌던 우유의 배신이랄까. 우유를 먹어야 뼈가 튼튼해진다는 말이 거짓인 것도 모자라 역효과를 낸다니 어이가 없었다. 선천적으로 뼈가 가느다랗고 약해서 어릴 적엔 정말 우유를 달고 살았는데 뒤통수가 지끈지끈해지는 그런 충격이었다. 


  거기다 전에 보았던 “자본주의 밥상” 다큐멘터리와 이어지는 부분이 많아 다시금 채식에 대한 생각을 굳히기에 좋았다. 그리고 삶의 전반을 차지하는 식생활에 대해 너무 무지한 채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평범'하게, '보통' 체중을 유지하고 '평균'의 삶을 유지하면 그래도 흔히 말하는 '평균 연령'까지는 무난히 가게 될 줄 알았는데, 삶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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