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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Jan 01. 2021

풀만 먹고 어떻게 살아?

그게 가능하다고?


 학교에서 상을 받고 돌아오는 날 저녁식사에는 통닭 한 마리가 올라왔다. 아빠, 엄마, 외할머니, 나, 동생 이렇게 다섯 명이서 꼭 한 마리를 먹던 시절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마리. 부족한 양에도 불구하고 항상 할머니께서는 나와 동생에게 닭다리 하나씩을 쥐어주곤 하셨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또 얼마나 아쉬웠는지 괜히 목뼈에 붙은 아주 작은 살점 하나도 아껴 먹곤 했었다. 그 덕에 여전히 부모님은 나를 목뼈를 좋아하는 아이로 기억하고 있다. 그게 아니라 고기가 고팠을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퍼지는 그 식탁 앞을 어찌 쉽게 떠날 수 있을까? 


  모두가 밥을 먹은 후 접시가 설거지통으로 향하는 그 순간까지 자리에 앉아 남은 부스러기들을 주워 먹었다. 부모님의 월급날, 혹은 상을 받은 그런 특별한 날에만 치러지는 행사였다.  


  왠지 그날만큼은 위장이 조금만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명절에 고기 앞을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본 외삼촌은 나를 “고기보”라고 불렀다. 그냥 “먹보”가 아니라 고기만 쏙쏙 골라먹는 “고기보”였으니까. 실은 기억나지 않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먹성이 대단했다는 말도 함께였다. 또래 친구들보다 우유를 세 배는 먹었대나.    





 그럼에도 또래보다 항상 한 뼘은 작았다. 체격도 왜소한 편이었다. 먹었던 고기는 다 어디로 가는지 걸신이 들린 게 분명했다.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고 안쓰러워할 때면 괜히 엄마는 억울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고기를 잘 먹이는데 하고 말이다. 괜히 딸을 굶기는 나쁜 엄마가 된 느낌이었다고.  


  하지만 나에게 마른 몸은 축복이었다. 그 덕에 고기를 맛있게 먹을 때면 어른들의 칭찬도 덤으로 따라왔으니까.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던 할머니의 흐뭇한 미소도,  연신 고기를 구워주던 아빠의 행복한 얼굴도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좋아하는 걸 그렇게 많이 먹고도 칭찬을 받는다니 돌아보면 고기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학교에선 매달 나오는 급식표에 형광펜을 들고 고기반찬을 표시해놓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친구들과 다리가 부러져라 달려가기 바빴다. 언젠가 한 번은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 넘어져 무릎에 피를 흘리며 밥을 먹기도 했었다. 뭐 급식시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보건실은 밥 먹고 가도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선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식판을 돌려 국그릇에 반찬을 받았다. 

 작은 체격이었지만 식탐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고등학생 때는 저체중에서 벗어나 내장 비만에 경고등을 켜고 살았다. 매번 과하게 먹는 식단과 앉아 있는 습관의 환상적인 결합이었다. 


  별명은 이제 기아에서 거미 인간이 되었다. 날씬하고 운동 잘하는 멋진 몸매의 스파이더맨이 아니라 거미처럼 몸통만 뚱뚱한 그런 몸이었다. 말 그대로 거미처럼 생긴 인간으로 그렇게 파란만장한 학창 시절이 지나갔다.




  대학에 들어오니 내게는 더없는 천국이었다. 매 끼니를 내가 선택해서 사 먹을 수 있다니. 거기다 맛없는 반찬까지 코를 막아가며 먹었던 학생이 더는 아니었다. 그렇게 점심은 가볍게 돈가스를 먹었고 저녁은 친구들과 “치킨엔 역시 맥주지!” 하며 쉬지 않고 잔을 부딪혔다.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치킨이 일상이 되어버리다니, 이것이야말로 성인이 된 특혜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학교 주변의 식당가를 하이에나처럼 누비게 되었다. 


 대학 근처의 국밥 지도를 만들기도 했었다. 점심시간에 갈 수 있는 10분 거리에 있는 5개의 국밥집을 정해놓고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오늘은 맑은 국물, 내일은 빨간 국물, 해장은 여기가 맛집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하곤 했었다. 집에서 밥을 먹기 싫은 날은 시험기간이 아님에도 일부러 도서관에 남았다.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먹고 휘핑크림 가득한 커피를 들고 돌아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었으니까.


  그러다 다시금 공부를 시작했다. 자유로운 대학생활도 반납한 채로 편입을 하기 위해 선택한 공부는 1년, 2년 그렇게 7년이 지나갔다. 여전히 점심시간에 혼자 먹는 국밥을 좋아하고 저녁에 먹는 치킨을 사랑했지만 자유로운 몸이었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시간에 쫓기듯 밥을 먹어야 했고 매일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또 먹고, 어쩌면 살기 위해 먹었다는 말이 어울릴 법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체력은 바닥을 향했다. 6시간씩 쉬는 시간 없이 끄떡 않고 앉아 있던 과거는 사라지고 30분이면 허리가 욕을 하는 게 느껴져 드러눕기 바빴다. 아이러니하게도 떨어지는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거기다 몸에 좋다는 보양식과 한약까지. 


  아빠께서 하루는 사슴농장을 운영하시는 친구분께 부탁해서 녹혈까지 받아오셨었다. 뭔가 끔찍한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험이 100일 정도 남은 그런 날이었다. 


  정말 안 먹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다 먹어보았지만 아쉽게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원기회복에 좋다는 장어, 삼계탕 정도는 그냥 일상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 나중에는 고기를 먹으면 더부룩하고 체하기 바빠서 소화를 시키는 것조차 스트레스로 다가올 정도였다. 


 




  몸은 하루가 다르게 계속해서 더 나빠져만 갔다. 하루에 12시간은 기본으로 잠을 자야 할 정도로 진이 빠졌다. 공부를 하기는커녕 맑은 정신으로 책을 본 날을 손에 꼽아야 할 정도였다. 책을 피는 순간부터 이미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은 "죽은 줄 알았잖아."라고 할 정도로 기절하듯 책상에 엎드려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내가 먹고 있던 고기들이 역해지기 시작했다. 몸에서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먹는 행위 자체가 거북스럽고 저걸 먹으면 또 아프겠다는 인식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마치 식탁 위에 올라온 돌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기는 내가 먹을 수 없는 그런 어떤 것이 되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 무렵 채식을 시작하고 다시 건강해졌다는 분이 갑자기 내 삶에 나타났다. 언젠가부터 소화불량으로 약을 달고 살아야 했고 고기를 끊고 나서야 사람처럼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건네셨다. 그리고 넷플릭스의 “자본주의 밥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추천해주셨다. 


 반신반의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상을 검색했다. 주말에 쉬면서 가볍게 보려던 나는 영상을 보고 한동안 충격에 빠졌다. 


 믿어왔던 고기 신화가 하나씩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실은 모르고 싶었던 것이 맞을 것 같다. 동물을 키워내기 위한 항생제며 각종 약품들이 내 몸에 들어와 건강한 작용을 할 리는 없었을 테니까. 그 외에도 각종 세균들의 번식으로 인해 염증반응을 일으킨다는 것도 잘 구워 먹으면 끝나는 부분처럼 여겼었다. 모두들 그렇게 살아가니 말이다.


  그제야 잊고 있던 퍼즐 하나가 생각이 났다. “고기보”로 살았던 어린 시절,  흔한 체증에 손을 따는 것은 기본이었다. 알약이든 한방약이든 몸에 잘 받는 소화제를 찾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기 바빴었다. 그렇게 체하는 것이 다 식탐이 강한 탓이라고 여겨왔다. 아니면 너무 맛있어서 급하게 먹었다거나. 고기를 소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주변에선 내가 유일했다. 그마저도 건강했을 때는 그나마 천천히 먹으면 소화시킬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더 이상 고기의 독소들을 정화시킬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솔직히 처음엔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보았던 영상들도 채식에 대한 이야기도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널린 게 맛있는 고기인데 나만 억울하게 병에 걸린 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채식은 정말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환자들이 하는 식단으로만 느껴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매체에서도 채식주의자는 유난스럽고 까다롭게 그려졌다. 하물며 건강 염려증에 미쳐버린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고기를 먹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두고 몇 날 며칠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아 세상에, 풀만 먹고 어떻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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