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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고씨 Jan 01. 2021

비건해서 죽었다는 사람은 없었잖아

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습니다만

 확실한 건 신년맞이로 플래너를 구매하던 만큼의 다짐은 아니었다.  비건 생활을 지금까지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마 이것 덕분이지 않을까.


  확신하지 않았고 결심하지도 않았다. 이번엔 꼭 성공해야 한다는 다이어트의 마음가짐도 아니었고 시험 볼 때 찍은 번호가 정답이 되길 바라는 간절함도 없었다. 


  거기다 나는 몸이 좋아지지 않으면 언제든 때려치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먹고 싶으면 먹어도 된다는 단서도 붙여 놓았다. 그것도 충분히 맛있다고 느낄 만큼까지 말이다.




  당분간 채식을 한다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오늘은 고기가 끌리지 않으니 내일 먹겠다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시던 할머니께도 매번 그렇게 말씀을 드렸다. 


  그날의 오늘이 지금의 오늘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시작은 이렇게 가벼웠다. 하루에 먹고 싶은 고기를 한 입씩 혹은 한 끼씩 줄여가는 것부터. 달리 말하자면 나의 삶에 충격을 보완하는 준비운동 같은 느낌이었다.


  무작정 채식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그저 나에게 건강한 식사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뭐가 나에게 더 잘 맞는지, 더 건강해질 수 있는지 혹은 오래 함께할 수 있는지. 


  그저 인스턴트 대신에 밥을 먹으려고 했고 공장에서 나오는 과자 대신에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것을 찾아다녔다. 시중에서 파는 감자튀김 대신에 감자를 직접 썰어 에어프라이어에 튀긴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하나씩 바꿔갔다.

 


 그렇게 서서히, 아주 천천히 변화된 삶에 익숙해져 갔다. 


  그래서인지 가족들도 나의 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저 때가 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니 하는 마음으로 응원해주었다.


  아빠는 아침마다 시장에 가서 신선한 과일들을 사다 주셨다. 대부분은 아침 대용으로 먹는 바나나였다. 매일 같이 사오는 과일에 졸지에 사육사가 된 것 같다며 툴툴거리셨지만, 항상 두 손 가득 이것저것 푸르른 채소들도 함께였다. 




  여름에는 옥상에 방울토마토 나무를 길렀다. 



  매번 사오기 힘드니 이게 낫겠다는 아빠의 큰 그림이었다. 화분 세 개가 무럭무럭 자라 옥상을 잡아먹을 듯한 크기의 토마토 나무가 되기까지 채식 생활은 순조로웠다. 


  물만 주어도 얼마나 잘 자라는지 심심하면 바가지를 들고 올라가서 한가득 따서 내려오길 반복했다.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해서 나중에는 갈아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물 대신 마시기도 했지만.




   엄마께서도 때아닌 채소 열풍에 많이 바쁘셨던 것 같다. 뒤늦게 독립을 하고 나서 이때의 일이 생각나 너무 죄송하기도 했다. 채소를 손질하는 일이 얼마나 지루하고 귀찮은 일인지 그때는 몰랐으니 말이다. 


  아빠께서 한 무더기로 채소를 사 오시면 엄마는 거의 반나절 이상을 부엌에 계셨다. 다듬고 찌고 무치고, 또 다듬고 데치고 무치고. 


  다른 가족들의 반찬과 내가 먹을 반찬들을 따로 하는 일이 얼마나 성가시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을까. 나중에는 가족들도 덩달아 채식을 하게 되었지만 처음에 순조롭게 밥을 먹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엄마의 도움이 컸다. 


  아주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밥상마다 벌어지는 할머니와의 실랑이만 빼고는.



 “으이그, 고기를 먹어야 힘도 나고 그런 거제.”

   할머니는 항상 안 먹을 것을 알면서도 내 숟가락에 고기를 얹어주려 노력하셨다. 오늘은 먹을까 싶어서 올려주시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뒤돌아 몰래 먹은 척해본 적도 있었다. 


  가끔은 채소 밑으로 고기가 숨겨져 있기도 했다. 알아차리고 채소만 골라먹으면 “참 귀신같은 가시내.”라고 하시며 헛헛하게 웃고 마셨다.



 고기가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을 기억하시는 할머니께는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지 않을까 싶었다. 거기다 고기라면 사족을 못쓰던 손녀가 안 먹겠다고 하니 얼마나 걱정이 되셨을까. 


  이제는 티격태격하던 그 시간마저 그리운 추억이 되었지만 하늘에서 내려보며 여전히 한숨을 쉬고 계시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 가는 대로 채식을 시작했다. 먹고 싶으면 더 먹고 아니면 말고. 


  100%를 해내도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으니 스스로 스트레스만 받지 말자는 다짐처럼 딱 맞게 흘러갔다. 처음엔 소고기 그다음엔 돼지고기 그다음으로는 닭고기를 끊었다. 그냥 물 흐르듯이 조금씩 덜 먹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사이에 몸은 더 건강해지고 예민해져서 고기에서 느껴지는 잡내에 더 민감해졌던 까닭이기도 했다. 그나마 제일 오래 먹었던 것은 새우튀김과 초밥이었다. 1일 2 치킨을 할 정도로 치킨을 좋아했었는데 초밥이 마지막까지 남아 의외이기도 했다. 새로운 나를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하나씩 멀어짐과 동시에 ‘비건’에 대한 욕심이 피어났다. 그건 또 어떤 삶일까. 여기서 무엇을 또 빼야 할까. 처음은 그저 호기심이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생활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했고  어떤 변화이기도 했다.

 

 ‘시도했다가 돌아오면 뭐 어때. 이러나저러나 내 삶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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