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구원이 아니잖아!
우리가 살게 되는 신혼집은 예비신랑이 이미 살던 자췻집이기도 했다. 협소한 공간에 들어갈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남편도 마침 미니멀로 살고 있어 내가 가져갈 책상과 침대, 그리고 서랍장이면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예비신랑은 달랐다.
“TV가 있어야지.”
스마트폰을 끼고 있던 예비신랑이 말했다.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TV는 필수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축구경기라면 그러려니 했겠는데 로맨스물 드라마가 뭐라고 이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드라마를 안 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삼순이(내 이름은 김삼순)가 한참 흥행했던 시절, 복수극인 ‘부활’을 보았던 성향인지라 로맨스 드라마가 대체 뭐길래 저러나 싶었던 거였다.
예비신랑은 여러 편의 로맨틱 코미디를 언급하며 드라마는 인생의 활력소라는 뜻을 강력히 내비쳤다. 나는 차라리 짧게 끝나는 영화가 더 낫지 않냐는 얘기도 해보았으나 소용없었다. 재벌 얘기 지겹지 않냐고 해도 그게 또 맛이라고 했다. 물론, 재벌이 나와도 아주 가끔은 재미난 것이 나오기도 하는데 눈만 높은 나에게 그런 드라마는 흔치 않았다.
“다음 대사 이거겠네.”
내가 다음 대사를 미리 뱉으면 배우가 똑같이 따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보기 싫은 막장 드라마를 어쩌다 가족과 함께 봤던 경우였다. AI도 쓰겠는 뻔하디 뻔한 한국식 드라마의 다음 대사 정도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연출은 또 얼마나 후진지.
무엇보다 로맨스 드라마의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바로 연애를 구원으로 여기는 점이었다. 대체 누가 누굴 구원할까? 돈이 많은 쪽이 돈이 없는 쪽한테? 아님, 결핍 많은 재벌남이 세상 씩씩한 캔디녀한테? 99.999퍼센트의 평범한 사람들을 세상 쓰레기로 만드는 것 같은 이런 드라마가 나는 싫었다. 하지만 예비신랑은 달랐다.
“드라마일 뿐이야.”
재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누구보다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오히려 나야말로 열등감의 표출을 드라마에 대한 분노로 하고 있었다. 우리는 종이접기 하듯 요리조리 텔레비전을 꾸겨 넣었다. 코로나 시절을 보내는 보물이기도 했다. 영화도 보고 OTT에도 가입했다. 드라마 ‘무빙’에 나온 순정 서사에 감탄하기도 했다. 나는 어느새 텔레비전에 빠져들었다. 남편과 동화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