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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국적 도시, 지형&지질 이야기

도시 지질학 이야기, 도쿄 지질학 이야기

by 전영식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그 수도인 도쿄(옛 명칭 에도)는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외국 도시 중 하나이다. 알듯 모를듯한 말소리에 읽힐 듯 말듯한 간판과 우리에게 익숙한 먹거리는 외국이면서 외국이 아닌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게다가 여기가 어딘지 기준 삼을만한 산 하나 찾기 어려운 도시의 환경은 더욱 외국같은 당황스러운 기분을 만든다. 도쿄가 왜 이렇게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드는지 그 이유를 지형과 지질에서 찾아보자.


기본적으로 도쿄지역은 습지다. 여러 강이 바다로 이어지는 평평하고 습기 찬 지역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도쿄로 이름 붙여지기 전인 에도 시대가 열리기 전에는 강하구에 쓸모없는 습지였다. 그곳에 지금은 천만명이 살고 있다. 그러면 어떠한 도시 개조가 있었을 것이다. 에도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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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ugawa_Ieyasu2 (1)_Kanō Tan'yū.JPG
도요토미 히데요시(좌, 위키미디어: Kanō Mitsunobu), 도쿠가와 이에야스(우, 위키미디어: Kanō Tan'yū)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는 천하통일을 마무리하는 오다와라 전투(1590, 그렇다 임진왜란 2년 전이다) 때에,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 1543~1616)에게 간토 8주를 줄 테니 에도에 본성을 짓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이 이야기에서 영화 <듄>에서 황제가 갑자기 아트레이데스 가문에게 아라키스로 가라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히데요시의 속마음은 알 길이 없지만 이에야스도 덥석 받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거기는 작고 습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당시 에도성 주변에는 띠로 지붕을 엮은 민가 100호뿐이었다고 한다.


결국 떠밀리듯 1590년 에도를 본성으로 삼은 이에야스 가문은 4대 쇼군 이에쓰나까지 70년에 걸쳐서 에도를 개조하는데 이는 주변의 지질, 지형을 잘 살려 에도성을 중건하고 방어망의 구축, 주민의 생활터전 마련을 위해 해안매립 등 도시개발을 진행했고, 그 흔적은 오늘의 도쿄에도 잘 남아 있다. 산도 없고 물도 많아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은 도쿄 이야기의 시작이다.


에도의 도시 개발


이에야스가 막부를 열기 전의 에도의 지형, 죠 지무쇼(2021)


위 그림은 에도막부가 열리기 시작해서 막 개척되던 시기의 에도의 지도이다. 에도(江戶, えど)라는 지명은 바다가 육지로 파고든 좁은 만이나 강어귀를 의미하는 '이리에(入江)의 입구'를 의미한다. 당시에 지형을 보면 에도성은 바로 바다에 붙어 있었다. 이 바다가 만인 히비야이리에(日比谷入江)였다. 그리고 만 건너편에 현재의 도쿄역, 유라쿠조, 신바시 일대에 해당하는 에도마에지마(江戶前島)라는 반도가 있었다.


이에야스는 에도성을 해상공격에서 방어하고 가신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에도마에지마의 육지 쪽 부분에 운하를 파서 에도항과 연결하는 해운을 위한 길을 냈는데 이 운하가 '도산보리'이다. 현재의 니혼바시강 유역에 해당한다. 히비야이리에로 흘러들던 히라카와강의 물줄기를 신바시 쪽 도산보리로 연결하여 에도성의 안쪽 해자가 된다. 그리고 나중에 히라카와강은 칸다강이 된다. 이때 파낸 토사는 히비야이리에를 매립하여 이 지역은 나중에 성 아래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조카마치(城下町)'가 된다.


1603년 이에야스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 되면서 막부의 실권자가 되었고, 본격적으로 다이묘들을 동원하여 이른바 '천하의 공사'라고 불리는 에도성 개수를 시작했다. 서고동저인 에도의 지형을 이용하여, 서쪽에는 무가의 거주구역인 '야마노테'를 만들고 동쪽인 해안가에는 바다를 매립해서 시민주거 구역인 '시타마치'를 만들었다. 시타마치의 매립을 위해 간다산(현 메이지대학 지요다 캠퍼스 근처, 오차노미즈)을 허물어 토석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니혼바시에서 시작하는 '5 가도'를 만들어 중앙집중을 꾀했다.


야마노테 지역, 나름 고지대


결국 도쿄는 무사시노대지의 동쪽 끝에 만들어진 도심지역이다. 당연히 대지의 끝은 바다다. 현재는 매립, 하천개발과 운하로 그 동쪽지역까지 도시로 개발되어 이용되는데, 에도시대 초기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그냥 갈대밭이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도쿄 도심에서 그나마 높은 곳은 지금의 JR 야마노테선에 둘러싸인 안쪽 지역과 서쪽인데, 이 지역은 후지산에서 날아온 화산재인 테프라(Tephra)가 쌓여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을 이루었는데 그래봐야 고저차가 적은 구릉지대일 뿐이다.


야마노테선의 운행지도와 운행 모습(우에노 아메야요코초 시장, 1971), 위키미디어: Brancacube & wilford peloquin


도시가 높은 곳에 형성되어 자연스러운 뷰를 형성하는 것과 빌딩을 높이 올려 뷰를 얻는 것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주변 지형이 차츰 높아지며 만드는 고지대는 우리나라의 성북동이나 한남동처럼 자연스러운 뷰를 만들지만, 뉴욕이나 동경처럼 평지에 마천루를 지어 만드는 뷰는 자연스럽지 않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그래서 롯데타워 100층에 사는 것과 성북동에서 남산을 보며 사는 것이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도쿄는 고지의 뷰가 없는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도시 풍경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도쿄 어느 동네를 가도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이유이다. 멀리 보이는 산이나 언덕 등 지리적인 근거를 가질 수 없다면 어느 곳이나 똑같은 지역이 되고 거기에는 고향이나 집으로 느낄 수 없는 이질적인 감정을 갖고 살게 된다. 하긴 에도자체가 이주민들로 형성된 지역이기 때문에 타향 같은 생각은 태생적으로 깔려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각기동대>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미래도시를 그릴 때, 지금 같은 평평하고 답답한 도쿄의 모습으로 옮기곤 한다.


현재 남은 에도의 모습


도쿄 지역은 습지를 간척한 곳이고, 강의 지류가 많아 지금도 도쿄 동부 쪽에는 홍콩, 방콕을 빰칠만한 운하가 있고 배가 다닌다. 지도에서 보듯 도쿄의 우측은 동경만에 막혀 도시의 확장이 어렵다. 서부 역시 산간지대로 주 식수원이라 대규모의 도심 개발은 어려운 상황이다.


에도성을 만들면서 일본 역사에서 반복됐던 다이묘들의 반란에 대비하기 위해 해자를 많이 만들고 그 건널목마다 검문소를 만들어 성을 지켰다. 지금도 에도성 근처를 잘 보면 달팽이 모습같이 시계방향으로 만든 겹겹의 해자를 두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해자는 전쟁이 없어지면서 통행에 방해물이 되었고, 해자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동경에 가면 니혼바시, 교바시, 신바시 등 다리가 붙은 지명이 많은 이유이다.


도쿄만 남쪽에서 찍은 항공사진, 우측상단에 레인보우 브리지가보인다, 위미미디어: Kentaro Iemoto


오차노미즈 역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2022)에 나온 유명한 장소이다. 지하철이 3개 노선이 만나는 곳이다. 아래 흐르는 강은 칸다 강으로 에도시대에 인공적으로 조성되어 도쿄 동쪽 스미다 강으로 흘러간다. 오차노미즈역(御茶ノ水駅)은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와 분쿄구에 있는 동일본 여객철도와 도쿄 메트로의 역이다. 칸다 강 위의 히지리바시에 가보면 언제나 3개 노선의 지하철이 지나가는 황금 장면을 찍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KakaoTalk_20250122_213136295.jpg 칸다강 히지리바시에서 바라본 오차노미즈역, ⓒ 전영식


칸다강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JR 선이 지나가고, 북쪽으로는 마루노우치 선이 지나간다. 칸다 강을 건너는 다리는 동쪽이 히지리바시(聖橋), 서쪽이 오차노미즈바시(御茶ノ水校)이다. 역 주변은 메이지・니혼・준텐도・도쿄 의과 치과 대학 등이 있으며 "일본의 카르티에라탱*"이라고도 불리는 대학가로 유명하다. 또한, 악기점과 스포츠 용품점, 역사 있는 유명 병원도 많다.


* 카르티에라탱(Quartier latin): 파리의 5구와 6구에 걸친 소르본의 역사적 중심지. 17세기 대학에서 라틴어로 수업한 것에서 유래했다.


도쿄는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열면서 번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에도'로 불린 도쿄는 일본 정치・문화의 중심지로 18세기 중반에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대도시로 변모했다. 1868년 에도 막부가 무너진 뒤 에도는 도쿄로 개칭되었다. 이름은 바뀌었어도 화재와 지진으로 무너지고 또다시 새운 에도의 구조와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무사시노대지


아래 사진은 도쿄의 행정구역을 보여준다. 서북쪽 산지방향에서 도쿄만 쪽으로 도시가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방향은 무사시노대지(武蔵野大地)를 따라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지는 도쿄도구부(東京都区部, 일명 도쿄 23구, 동부를 제외), 타마지구의 대부분(미나미타마를 제외), 그리고 토코로자와시(所沢市) 등 사이타마현 이루마지역이나 시키시(志木市) 등 니자지역을 포함하고, 카와고에시(川越市)가 무사시노대지의 북단에 위치한다


도쿄도의 지도, 위키미디어: T.Kambayashi


무사시노대지에는 바다에서 쌓인 불투수성 점토질층위에 물이 스며들기 쉬운 역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위를 화산재가 덮고 있다. 따라서 도쿄의 수원지 역할을 한다. 무사시노 대지는 원래 약간 높은 지역에 과거의 후지산 폭발의 화산재가 쌓여 보다 높은 지역을 형성한 것이다. 이 지역 전체에 화산재는 공평하게 쌓였겠지만, 강의 흐름이 지형의 고저를 더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지역의 융기에 따른 다치카와 단구와 무사시노 단구 등 하안단구가 잘 발달해 있다. 무사시노 대지는 우에노역의 서쪽에서 15m 이상의 표고차를 보이는 절벽이 되어 끝난다.


Musashino_Plateau.jpg 무사시노대지, 위키미디어: Landsat satellite pictures, 2004


도쿄는 서고동저의 지형이기 때문에, 도쿄의 시부야나 신주쿠 쪽에서 전망대에 올라보면 서쪽으로는 멀리 산맥이 보인다. 날씨가 맑아 대기가 청명하면 남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후지산도 볼 수 있다. 이 후지산이 분화하며 뿜어낸 화산재가 오늘날의 도쿄를 만들었다(하단의 링크글에 관련이야기가 있습니다).


시부야 스트림에서 본 도쿄 서쪽 전경, 위키미디어: Syced


도쿄의 지질


도쿄가 자리 잡고 있는 간토 평야는 지속적인 분지 형성의 결과로 형성되었다. 분지를 형성하고 있는 지각 운동으로 인해 분지 내에는 매우 두꺼운 층으로 퇴적물이 쌓였다. 도쿄는 플라이스토세 후기에 형성된 화산성 퇴적암 위에 있으며, 충적대 퇴적을 통해 형성되었다. 또한 주변 지역에는 최근의 강/연안 퇴적물로 인해 홀로세 시대에 형성된 퇴적암이 많이 존재한다.


해안선에 가까워지면 해양 퇴적물과 비해양 퇴적물이 혼합되어 형성된 암석을 찾을 수 있다. 일본 전체는 판구조론의 영향으로 퇴적, 화성, 변성, 퇴적 복합체(대륙판 아래에서 해양판이 침강할 때 형성되는 해양 및 육상 퇴적물에서 형성된 암석)가 존재하는 다양한 암반 조성을 가지고 있다.


동경의 지질.jpg 도쿄도구부의 지질, 출처: 산업기술총합연구소


도쿄 타워와 스카이트리


640px-Tokyo_Tower_and_Tokyo_Sky_Tree_2011_January_.jpg 도쿄 스카이트리(좌)와 도쿄 타워, 2011, 위키미디어: Morio


잘 알려져 있듯이 도쿄에는 높다랗게 유명한 방송탑이 2개 있다. 하나는 미나토구의 도쿄타워(333m)이고 다른 하나는 동쪽 스미다구에 있는 도쿄 스카이트리(634m)이다. 도쿄타워는 1957년 파리의 에펠탑을 모방하여 만들었는데 자존심에선지 에펠탑보다 33m 더 높게 지었다. 전망대 상부에는 한국전쟁 때 쓰인 폐전차 90여 대분의 고철을 사용했다고 한다. 도쿄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자 지상파 디지털 TV의 전파수신 범위가 부족해져서 2011년 새로 만든 것이 스카이트리이다.


도쿄타워는 무사시노대지의 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든든한 암반 위에 지어졌는데, 스카이트리는 그렇지 못했다. 스미다구는 원래 습지인데 당연히 높은 건물을 세우기엔 부적절한 지역이다. 매립지와 습지에 지어진 구조물은 지진 시에 액상화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아래 나가노 글 참조). 마침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지진이 나면서 완공이 연기되기도 했다. 다행히 안전에 문제가 없어 개장했고 현재까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인공구조물로 기록되고 있다. 비슷한 방송탑이지만, 지질학의 시각으로 보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탑'인 것이어서 흥미롭다.


참고문헌


1. 가와이 아쓰시, 하룻밤에 읽는 일본사, 알에이치코리아, 2020

2. 김희영, 이야기 일본사, 청아출판사, 2006

3. 도시지역의 지질지반도, 도쿄도구부 해설서, 2021, 산업기술총합연구소, AIST site, https://gbank.gsj.jp

4. 류광하, 에도시대를 알면 현대 일본이 보인다, 책나무, 2019

5. 명치대학교 홈페이지 https://www.meiji.ac.jp/history/meidai_sanmyaku/thema/article/mkmht000000t9raf.html

6. 박진한, 도시를 거닐면 일본사가 보인다, 푸른역사, 2024

7. 양혜윤, 하룻밤에 읽는 일본사, 지경사, 2007

8. 조 지무쇼, 30개 도시로 읽는 일본사, 다산북스,2021

9. wikipedia jp.


전영식, 과학커뮤니케이터,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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