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내가 낳은 이 아이를 향한 사랑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이전에 내가 사랑이라고 느꼈던 것들은 모두 사랑이 아니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아이를 낳기 전에 내가 했던 사랑은 그래도 얼만큼은 내가 먼저였다. 그를 사랑하지만, 그래도 그보단 나를 더 사랑했다. 자기 전에 듣는 목소리가 좋았지만 그래도 졸리면 전화를 끊었다.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해야할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하는 게 우선이었다. 내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심하게 싸우면 헤어질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 아이를 향한 사랑은 도대체 내 자아가 끼어들 구석이 없게 나를 몰아갔다. 잠을 못 자도 괜찮았고, 밥을 못 먹어도 괜찮았다. 내 살을 퍼주고, 내 시간을 퍼주고, 내가 가진 모든 걸 퍼주면서 이런 걸 희생이라고 하는구나, 헌신적으로 사랑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깨달았다. 힘들고 괴로워도 이 사랑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만 4년이 지나갔다. 그 사이 아이가 한 명 더 늘어났다. 두 아이의 엄마로, 아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배려하고, 참으며 사는 것이 어느새 당연해졌다. 우스갯소리로 "오늘도 우리 상전님 모시느라 힘들었어." 하면서, 옛날에 시녀들은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생각했다.
체육관에 있는 사람들은 격투기를 하는 사람들 답지 않게 하나같이 젠틀했다. 종목이 종목인 만큼 호전적이고 승부욕 강한 사람이 과하게 경쟁적으로 하다가 다치게 하는 경우도 있다던데, 나는 그런 사람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생긴 건 세상 무뚝뚝하고 시크하게 생겼는데, 같이 기술 연습을 하다가 혹시라도 실수를 하면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를 연발했다. 초보인 내가 어리바리 어쩔 줄 몰라하면 "여기는 이렇게 잡으시고, 여기는 이렇게. 그렇죠! 맞아요." 하면서 다정하고 친절하게 가르쳐 줬다. 그 예의 바르고 자상한 사람들 틈에서 나는 뭔가 생경하면서도 좋은 기분을 느꼈다. 내가 오랜만에 배려 받고 있었다.
어리기 때문에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아이들과 지내다가,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어른들 틈에 있으니 행복했다. 이렇게 서로서로 배려하는 게 상식이었다. 그동안 내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았던 거다.
가정에서의 내 희생은 당연하지 않다. 어리고 미숙한 아이들을 이해해 주고, 받아 주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는 일은 대단하고 가치로운 일이다. 엄마니까 참고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며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말자.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엄마에게서, 아이들도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