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빠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고 "이것 좀 눌러봐." 라고 할 때가 있었다.
그 엄지를 순진하게 눌렀다간 아빠 방구를 직격으로 맞곤 했다.
질색하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손으로 코를 막는 나를 보면서 아빠는 낄낄거리며 재밌어 하셨다.
이건 방구쟁이 아빠를 둔 우리집에서만 벌어지는 풍경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의외로 전국민적으로 유행했던 방구 스위치였던 걸까?
아이랑 <뿡뿡빵빵 부부맨> 이라는 EBS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 애니메이션의 아빠도 방구를 뀌기 전에 아이에게 엄지 손가락을 누르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선 부부맨이라는 방구를 활용한 슈퍼히어로로 변신한다.
아이들도 나도 무척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추천!)
엄지손가락 = 방구 스위치 = 방구 미사일 발사!
나는 아빠의 방구쟁이 유전자를 물려받아 시도때도 없이 방구가 마렵고 틈만 나면 뀌어 댄다.
얼마 전에 둘째가 TV를 보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핸드폰을 하다가 방구를 뿡뿡 뀌었다.
"윽, 엄마 냄새 나. 저리 가!"
뭐야, 너 자는 거 아니었어?
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방구로 애 잠을 깨운 거냐며 깔깔거렸다.
<하트 방구> 라는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물론 방구의 표준어가 '방귀' 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방귀] 라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한국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방귀를 '방구' 라고 친근하고도 익숙한 말을 고른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책 속 고구마 가족은 하트 방구를 뀐다.
하트 방구는 핑크색에 냄새도 향기롭다. 고구마 가족은 하트 방구로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하트 방구를 뀌지 못하게 되고, 고구마 가족의 방구는 똥방구로 바뀌게 된다.
똥방구를 하트 방구로 되돌리려고 여러 노력을 하지만, 결국 바꾸지 못하고 서로의 똥방구를 인정하고 살게 된다는 이야기다.
가족은 결국 서로의 똥방구를 맡으며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려주는 하이퍼리얼리즘 그림책이다.
그래, 지독한 똥방구도 받아주는 게 가족이고 이런 게 진짜 사랑이라구.
누군가 방구 뀌고 그 냄새 맡고 질색하는 표정 보는 것도 재미지.
암, 암, 그렇고 말고!
이렇게 오늘도 나는 뿡뿡빵빵 방구우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