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가족을 지켜보며
설거지 더미를 뒤로 하고 식탁에 앉았다. 어제 저녁 핸드폰 화면에 비친 아버님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시할아버님의 추도예배를 드리기 위해 안성의 시댁 식구들과 제주의 우리들이 영상 통화를 했다.
아버님은 그동안의 항암 치료로 얼굴이 많이 달라져 계셨다. 한눈에도 여위고 수척해져 작아진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버님. 에구. 너무 많이 야위셨어요."
"응. 뭐. 그렇지."
10분여간의 추도예배가 끝나고 아버님은 11월에 제주에 오실 일정을 말씀하셨다. '출장' 이라는 단어가 귀에 거슬리게 꽂혔다.
"아버님, 아직도 일하시는 거예요?"
"그러게 말이야. 오늘 항암 주사 맞고 퇴원했는데 내일 또 출근하신댄다."
어머님의 못마땅해 하시는 목소리가 들렸다.
"가끔 얼굴 도장을 찍어야지 안 그러면 잘리지."
어휴. 아버님의 말씀을 들으며 한숨을 속으로 삼켰고 그러다 영상통화가 끝났다.
아버님은 폐암 4기이시고, 얼마 전 3개월의 병가를 받아 치료에 전념하시겠다고 하셨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종종 직장에 나가 얼굴을 비치시고 일을 처리하곤 하셨던 거다.
"여보, 아버님 왜 자꾸 일하시는 걸까? 그게 돈 때문이라면 너무 속상해. 몸이 저렇게 안 좋으신데, 돈 때문이라면 그 커다란 집 그냥 팔아버리시지. 왜 자꾸 일하시는 거야. 왜 그 돈 많이 드는 큰 집을 이고지고 계시는지, 집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시고 그 돈으로 여생을 좀 누리시면 좋겠어."
"나도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아. 집 팔고 그냥 제주도 내려오셔서 여기서 치료 받으시면서 손녀들 자주 보시고 쉬시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데 아빠는 그렇게 일하시는 게 아빠의 삶의 이유이자 의미일 수도 있지. 그 나이가 되도록 직장에서 필요로 해준다는 사회적 자긍심 같은 거. 내가 없으면 이 회사가 안 돌아간다는 자부심. 그런 게 아빠의 삶을 지탱해주는 의미라면, 그걸 끝까지 놓고 싶지 않으신 거라면 우리도 어쩔 수 없지."
맞는 말이었다. 투병 중에도 일하는 게 아버님이 진짜로 원하시는 것이라면.
11월에 오시면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 나눠 봐야지. 어떤 게 진짜로 아버님이 원하시는 삶인지.
나라면 어떨까. 내가 말기 암 환자라면. 항암 과정이 고통스럽고 내게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면. 나는 그 남은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을까.
문득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지금 생각해두는 게 아무 소용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갑작스럽게 생의 끝자락에 서게 되면,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욕망과 미련과 쓰디쓴 것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그냥 휩쓸려 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님을 만나면 용기를 드려야지. 아프기 전의 아버님 모습 그대로 살아가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