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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May 22. 2024

여행의 단상들

각자의 삶, 정진(精進), 고난&행복, 제행무상, 이심전심, 천재와 범부

#20240522 #여행 #단상들 


# 비행기 안에서 화장실 간다고 일어선 적이 있다. 기내는 어두웠고, 한국의 시간으로도 아직 낮이었는지라 사람들 대부분이 In-flight entertainment(IFE, 기내 엔터테인먼트) 혹은 개인 패드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저마다의 인생을 사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비행기들을 타고 있지만 저마다의 영상을 보는 것처럼, 같은 세상을 살아도 각자 다르게 겪고 경험하고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게. 




# IFE 바탕화면에 3D 지도가 보여서 중간중간 어디쯤 왔나 확인했다. 그냥 목적지의 방향을 보여주는 목적인지는 몰라도 처음에는 인천에서 프라하까지 일직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근데 당장 인천에서 이륙할 때부터 방향이 달랐다. 화면에 보이는 대로 바로 프라하 방향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남쪽으로 날아오른 뒤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뒤 비행기는 이리저리 날아서 프라하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나서 보니 직선거리보다 꽤 둘러서 왔다. 

바로 위로 날아가는 건가 싶더니, 바로 휘청거리는 항로. 꼬불꼬불 날아왔다.
출발할 때는 일직선으로 보였지만, 도착할 때 보니 둘러서 왔다

 문득 우리의 삶도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목표하는 바까지 곧바로 갈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당연히 그럴 수는 없겠지. 중간중간에 원치 않는 희극이나 비극이 숨어 있을 테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목표를 잃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 그렇게 계속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도착해 있는 것. 정진(精進). 




# 프라하 숙소 주변은 돌길로 되어 있었다. 돌길에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다 보니 손이 무척 아팠는데, J가 저 앞에서 혼자 먼저 가는 게 조금은 서운했다. 아마 J는 숙소의 입구를 찾는다고 여념이 없었으리라. 문득 우리가 아기를 키울 때도 이런 순간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무거운 캐리어 대신에 아기와 아기 짐이 있겠지. 꼭 육아뿐만이 아니라 살면서도 공동의 일을 혼자서 해야 할 때가 있겠지. 근데 앞서가는 J 너머로 보이는 강과 하늘이 너무 예뻐서, 살면서 느낄 보람이나 기쁨들이 이런 걸까 싶었다. 인생은 힘들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을, 간간이 좋은 일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돌길에서 캐리어 끌기가 참 손이 아팠다. 그래도 저 끝에 강과 좋은 경치가 보였다.


# 어쩌다 보니 게이 얘기가 나왔다. 성 소수자들은 게이, LGBT 등등 어떻게든 자신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단어들을 만들어내는데, 그렇게 만들어지는 단어들은 아마 인간의 숫자만큼(어쩌면 그보다 더) 다양할 거다. 근데 그렇게 한다 해도 자기가 정확하게 표현된다고 느껴지는 때는 아마 없을 거다. 이건 저주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한 사람을 어떻게 한 단어로 규정하겠어, 그 자신도 계속해서 변하는데. 


 근데 그렇게 계속 변한다는 걸 계속해서 느끼고 있으면 혼란스럽고 힘들 것 같다. 어쩌다가 그렇게 변화를 느끼는 눈을 떠버렸을까? 제행무상(諸行無常)이 딱 그 얘기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들 생각할까? 




# 외국 여행의 장점은 바로 옆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해도 그들은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옆자리에 어린 여자아이와 아이의 엄마, 아빠가 있었는데, 여자아이가 떼를 썼는지 눈물 자국이 나 있었다(고 J가 그랬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얘기를 하는 동안 아이 엄마는 계속해서 차분하게 아이를 다독여주었다. 그걸 보고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단어와, 유튜브에서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가 칭얼거리는데, 못 알아들어도 엄마가 차분하게 얘기하니까 아이가 조용해진 영상이 떠올랐다. 우리는 ‘말’이라는 틀로 생각과 느낌을 주고받지만, 그건 그냥 도구일 뿐이고 사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빈에 있는 프로이트 박물관을 다녀왔다. 천재(天才)와 범부(凡夫)의 차이는 그런 데에서 있는 걸까? 같은 환경에서 같은 현상을 보고도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 그런 걸 보면 누구를 기리기 위한 박물관이나 기념관 같은 것들은 어쩌면 크게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천재와 똑같은 시기,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경험했다고 해도 그 천재와 똑같이 생각하고 비슷한 업적을 남길 수 있을는지? 그런 걸 보면 위인(偉人)과 나와의 거리감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프로이트의 진료실이자 연구실이었던 곳. 지금은 그저 전시품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Aha phenomenon(eureka effect)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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