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인연
#20241128 #시골길 #왕복2차로 #인내 #인연
절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마을을 지난다. 가로등도 드문드문 있는 왕복 2차로(편도 1차로) 도로를 지나야 하는데, 똑같은 왕복 2차로인데 어떤 날은 이렇게 받아들이고, 또 어떤 날은 저렇게 받아들이는 게 웃겨서 글을 남긴다.
하루는 절에 다녀오는데, 그 길에서 앞에 차가 한 대 천천히 가고 있었다. 그날은 마음이 넉넉했는지, 어둡고 초행인데 앞에서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차가 있으면 좋지 않으냐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앞차 속도에 맞춰서 운전하는 것처럼 사람들 마음에도 맞춰서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그렇게 되려고 참는 연습을 하는 거라고 받아들였다.
근데 또 하루는 똑같은 길에 다른 차가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그날은 마음이 좁았는지 천천히 가는 차에 화가 많이 났다. 그 길이 끝날 무렵 앞차가 옆으로 빠져줬는데, 모래주머니를 벗어던진 것처럼 홀가분하고 속이 시원했다. 한동안 지키던 계율을 내려놓았을 때의 기쁨이 이런 것이려나? (근데 계율은 초월하기 위해서 지키는 것인데, 아직 초월하지 못했으니 내려놓았을 때 기쁜 게 아닌가? 초월했다면 내려놓든 말든 상관없지 않을까?) 클랙슨을 울리지도, 하이빔을 켜지도 않았지만, 몇 차례 가까이 붙기는 했다. 앞에 두 가지를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잘 참았다고 하기엔 조금 아쉽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이랬다. 저렇게 천천히 가면서 나를 괴롭히고 있는 사람은, 저 이가 날 괴롭히기로 의도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이럴 인연으로 만나지 않았을까? 어차피 나와 이런 인(因)으로 맺어져 있었을 테니, 언제고 이런 식으로 만났겠지. 지금에야 연(緣)이 닿아서 이렇게 드러난 것일 테고.
그러니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나를 괴롭게 하거나 힘들게 하면 그런 인연이 도래했음을 눈치채고, ‘그래 네 마음이 풀릴 때까지 다 쏟아부어라, 다 풀고 가라.’ 마음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야 상대 마음에 아무것도 안 남을 테니까. 근데 겨우 운전하다가 만난 인연 갖고 이 정도인데, 더 큰 악연을 만나서 나를 괴롭히면 얼마나 괴로울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