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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콜라를 버리며

견물생심(見物生心)과 불응주색생심(不應住色生心)

by 초이

#20241212 #루콜라 #견물생심 #불응주색생심


11월 초 쓱데이라며 이마트에서 여러 물품을 할인한다길래 가보았다. 루콜라도 보였다. 나는 먹을 거만 사라고 했는데. J는 사두면 먹을 거라며 루콜라를 카트에 담았다. (애초에 여기서부터 견물생심이었구먼) 그렇게 루콜라는 우리 집에 와서 기다란 물병에 담겨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다가, 1주일 정도 지났을 때 잘 씻기고 닦여서 실리콘 지퍼백에 들어갔다.


11월 중순 즈음 파스타를 해 먹을 거라고 지퍼백을 열었는데, 루콜라가 시들고 물기에 젖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J는 자기가 잘못해서 쓰지도 못하고 버린다며 자책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부분을 파스타와 같이 볶아서 J만 먹었는데 그 때문인지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루콜라를 J의 눈에서 치우는 것뿐이었다. 설거지하면서 루콜라를 다 버려버리고, 음식물쓰레기 처리도 해버렸다.


생각해 보면, J는 이것저것 마음을 잘 낸다(見物生心). 나는 겁도 많고 귀찮고, 실망하고 아픈 게 싫어서 마음을 잘 내지 않는데, J는 잘도 낸다. 그렇게 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럴 때는 또 안 좋은 쪽으로 마음을 내버리니까 그건 안 좋은 것 같다. 보이는 것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면(不應住色生心), 관자재(觀自在)할 수 있다면 루콜라가 보이든 말든 상관없었겠지만, 중생인 우리는 그럴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냥 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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