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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를 사며

“늘 깨어있으라.”

by 초이

#20241219 #hereandnow #깨어있으라


다른 빵집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회사의 빵집은 전날 팔고 남은 샌드위치를 현금 4,000원에 파는 경우가 있다. 지나가다가 눈에 띄면 종종 사곤 했다.


그날 아침에도 그렇게 할인된 샌드위치를 사 먹을 생각에 기분이 살짝 들떠 있었다. 출근 도장을 찍고 바로 빵집으로 가서 샌드위치를 사려고 했다.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빵집에서 7시 30분에 진열대에 있는 샌드위치라면 당연히 전날 팔다가 남은 게 아닐까? 그날 아침에는 샌드위치에 현금 4,000원에 판다는 말이 안 붙어있었다. 그래도 나는 당연히 4,000원일 줄 알고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서 계산대로 가져갔다. 마침 사장님이 계산하러 오셨다. (이전에도 일찍 와서 4,000원짜리 샌드위치를 기대했는데 사장님이 안 계신다고 해서 못 먹은 기억이 있었다) 근데 6,900원, 정가라는 거다. 왜 4,000원이 아니냐고 물으니까, 사장님은 샌드위치가 오늘 아침에 들어왔다고 했다.


‘거짓말’. 오늘 아침에 들어왔는데 샌드위치 개수도 그렇게 적고, 팔다 남은 것처럼 대충 진열해 놓는다고? 그때 내 눈에는 사장님이 돈을 많이 받으려고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화나는 마음 반, 당혹스러움 반에 정신을 못 차리고 더 생각하지 못하고 부르는 대로 계산하고 나왔다.


차를 타고 나서야 통신사 할인도 못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산하기 전에 좀 더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좀 더 절제할 수 있었다면 조금 부끄러워도 샌드위치를 다시 내려놓고 더 싼 빵으로(머핀이나 토스트 같은 거로) 바꿀 수 있었을 텐데. 아침이라 더 생각이 안 되었던 건지, 아니면 이런저런 마음에 휩쓸려서 그랬는지 Here & Now가 되지 않았다.


사장님 말이 사실인데 내 멋대로 사장님이 거짓말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일 수도 있다. 그리고 설령 거짓말이라고 한들 애초에 6,900원짜리였는데? 그걸 4,000원에 파는 건 사장님 마음이다. 그렇게 안 파는 것도 사장님 마음이고. 내가 멋대로 4,000원에 먹을 거라고 기대하고는 그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또 제멋대로 마음이 일어났다.




부처님께서도 “늘 깨어있으라”라는 법을 설하셨다기에 검색해 보았다. [대반열반경]에 깨어있으라는 법문과 함께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라는 법문을 하셨다기에 찾아보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자귀의 법귀의(自歸依 法歸依)를 검색하자 [불설장아함경(佛說長阿含經)] 제6권, 6. 전륜성왕수행경(轉輪聖王修行經) 제2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너희들은 마땅히 스스로 맹렬히 정진하되[熾燃], 법(法)에 맹렬히 정진하고 다른 데에 맹렬히 정진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귀의하되 법에 귀의하고 다른 데에 귀의하지 말아야 한다. ... 비구는 안 몸[內身]을 관찰하여 부지런히 힘써 게을리 하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애야 한다. 바깥 몸[外身]을 관찰하고 안팎 몸[內外身]을 관찰하여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 잊지 않아 세상의 탐욕과 걱정을 없앤다. 감각[受]과 뜻[意]과 법(法)의 관찰도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오늘의 나는 고작 샌드위치를 사면서 거창하게 이런 것을 떠올리지만, 이런 게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나중에 큰일이 닥쳐서도 잘 관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불설장아함경, https://kabc.dongguk.edu/content/view?dataId=ABC_IT_K0647_T_006&gisaNum=0037R&solrQ=query%24%EB%8B%B9%EC%9E%90%EC%B9%98%EC%97%B0%3Bsolr_sortField%24%3Bsolr_sortOrder%24%3Bsolr_secId%24ABC_IT_GR%3Bsolr_toalCount%241%3Bsolr_curPos%240%3Bsolr_solrId%24ABC_IT_K0647_R_006_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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