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習) 깨기의 어려움
#20241226 #습 #습관깨기
안 쓰던 가방을 J가 쓸 일이 생겼다. 가방이 등에 너무 붙는다고 해서 가방끈을 늘리려는데, 풀리지 말라고 지어놓은 매듭이 너무 오래되어 잘 풀리지 않았다. 오랜 습(習)을 깬다는 게 이런 걸까? 나는 그 상태로 오래 써서 불편한 게 없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새로 맞추려니 잘되지 않는 게, 원래 하던 걸 깨고 다르게 하려니까 힘든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었다.
지하철 승강장 의자에 앉아 집중하니까 한쪽 매듭은 풀렸다. 풀리고 나서도 쭈글쭈글하게 예전 매듭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게 훈습(薰習)인가 싶었다. 정신분석에서는 working through(환자들이 무의식의 내용들을 반복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를 마치 연기가 배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하여 훈습이라고 번역했지만, 원래 훈습은 업(業)과 윤회(輪廻) 이론에 입각하여 몸에 밴 습관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다. 매듭이 지어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나 그 모양으로 굳어져 매듭이 풀어진 다음에도 이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게 꼭 그런 것 같았다. 환자가 통찰을 가져서 자신의 문제를 알게 되어도 바로 해결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매듭을 풀려고 하는데 지하철이 승강장으로 들어온다는 방송이 나왔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이걸 해결하고 타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죽기 전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다 하고 가야 하는데’라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내가 죽기 전까지 하고 가야 하는 일들은 무엇인가? 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부모님과 주변에서 받은 것들을 다시 돌려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回向), 살면서 내 멋대로 만들어낸 업(業)과 습(習)을 할 수 있는 만큼 깨고 가야 하지 않을까.
* 신경정신의학 3판, ch 30. 정신사회적 치료, 정신분석에서 일어나는 과정 및 기법. 해석, 훈습과정, 755~758p,
- 훈습과정(Working through): ... 실질적인 환자 자신의 변화는 수반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진정한 변화를 수반하기까지 환자가 해석을 반복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훈습과정이라고 한다.
- 해석(Interpretation): ... 좁은 의미의 해석의 뜻은 무의식을 의식화시키는 것이라 알려져 있고, 넓은 의미의 해석의 뜻은 환자에게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시도되는 분석가의 모든 중재, 개입(intervention)으로 여겨진다. 치료 실제에서의 해석은 정신분석치료의 치료과정 중에 분석가가 행하는 언어적인 치료적 행위로서, 분석가가 환자의 정신적인 생활에 관해 충분히 이해하게 되면, 이를 말로 표현하여 환자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 훈습(薰習): 업과 윤회 이론에 입각하여 몸에 밴 습관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