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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다가 2

몽중대작불사(夢中大作佛事)

by 초이

#20250702 #샤워 #마음 #몽중대작불사


샤워를 하면 물이 여기저기 튄다. 나는 샤워를 하고 나서 물기를 쓸어내는데, 매일 물을 쓸다 보니 이게 은근히 귀찮다. 씻기는 씻어야 하고, 물기를 안 쓸어내면 미끄럽고 곰팡이 슬고.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이제는 욕조에 앉아서 샤워한다. 앉아서 샤워하면 샴푸 통이 있는 선반에 물이 고이지도 않고, 물이 튀는 범위도 작아져서 조금만 쓸면 된다. 조금만 쓸어도 되는 건 편한데, 엉덩이나 다리를 씻는 건 불편하다.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과나-그거아세요.png 출처: Youtube 과나 - 그거 아세요 2절 中


마음을 크게 쓰면 크게 흔적이 남는다. 그러면 크게 치워야 한다. 나는 크게 치우기 싫다. 귀찮다. 그래서 여태껏 소극적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병원 점심시간에 밥을 먹다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환자들 얘기가 나왔다. 환자 중에는 외출/외박을 하러 갔다가도 금방 돌아오는 분이 있었단다. 가족/집보다 더 편한 병원이라니, 오갈 데 없는 이들에게 집이 되어주셨구나 싶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원래 여기는 병동이 3개나 될 정도로 큰 병원이었다. 산책을 하고 오니 원장님께서 부원장님하고 병원 화단에서 잡초를 뽑고 계셨다. 도와드리려고 하니까 됐다고, 들어가서 쉬라고 하셨다. 병원을 운영하려면 이런 것도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나는 원장님처럼 이렇게 마음을 내서 큰 병원을 짓고 운영을 할 수 있을까?


몽중대작불사(夢中大作佛事)라는 말이 있다. 이 현실이 꿈(허상)이지만 크게 지으라는 것이다. 생각, 마음, 행동, 인간관계, 사회적 지위, 직업, 학업, 사랑 등등에다가 그걸 만들어낸 나조차도 다 언젠가는 부서지고, 망가지고, 멸하지만, 그럴 걸 알면서도 크게, 좋게 짓는 것이다. 왜? 우리가 사는 여기는 어떤 원인을 지어놓으면 그에 대한 과보를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좋게 지으면 좋게 받고, 나쁘게 지으면 나쁘게 받는 것이 이곳의 이치다. 이 우주가 허상이지만, 그래서 기쁨, 슬픔, 쾌락, 고통 등이 다 허상이지만, 깨닫지 못한 존재에게는 여실하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잘 살아야 한다.


샤워는 쭈그려서 하면 물이야 적게 튀지만, 몸을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는 느낌이 안 든다. 또, 작게 마음을 쓴다고 작게 마음이 남는 건 아닌 것 같다. 앞으로는 귀찮음을 이겨내고 똑바로 서서 샤워를 해야겠다. 그게 주어진 일들을 똑바로 마주하겠다는 마음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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