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업과 습, 우주의 바깥
#20250711 #여행 #윤회 #불타는집 #거북이
#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 갈 때는 이코노미에 앉았는데, 내릴 때는 first class가 내리는 곳으로 내렸다. 어차피 내리는 길이라 그런지 승무원이 따로 막지 않았다. 내릴 때는 first class로 내리든, second class로 내리든 다 똑같다는 점에서, 죽을 때는 다 똑같은 게 아닌가 싶었다. 삶이라는 비행기에서 economy에 탔든, business에 탔든, first class에 탔든 내려야 하는 건 마찬가지. 아무리 이승에서 잘 살았든, 못 살았든 간에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한 생뿐인가? 더 크게 보면 한번 높은 곳에 가면 한 번 낮은 곳에 가는 것이 윤회의 법칙인데)
#우리 집 꼬맹이와 놀다가
- 중생은 갓난아기와 같다고 들었다. 업(業)과 습(習)에 매여서 옴짝달싹 못 하는 중생. 그래서 자기가 지어놓은 대로 받고, 지은 대로 또 지어서 또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근데 그런 중생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려고 제대로 마음을 낸다면, 마치 아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어른들이 도와주듯이 성인(聖人)들께서도 가피를 내려주시고 기꺼이 괴로움을 감수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중생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기에 도와주시려고 해도 도와주실 수가 없다. 그러니 마음을 내고 행동으로 잘 옮겨야겠지. 뭔가 껀덕지가 있어야 도와주실 수 있으실 테니까.
- 꼬맹이가 침대 밑에 들어갔는데, 어떻게 해야 나오게 하나 하다가 밖에 있던 장난감으로 유혹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자동차 소리를 붕붕 내니까 재밌어하면서 얼른 침대 밑에서 빠져나왔다. 문득 화택(火宅)에서 아이들을 꺼내는 장자의 비유가 떠올랐다.* 장자가 들어가서 직접 아이들을 꺼내오지 못하는 이유는 불이 뜨거워서가 아니라, 직접 꺼내봤자 아이들 자신들이 그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면 도로 불타는 집으로, 그게 좋으니까 좋다고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치지 않으면 아무도 어떻게 할 수가 없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버리는 중생의 습(習). 내가 꼬맹이를 장난감으로 불러냈듯이, 불보살님들도 중생들을 여러 방편으로 화택에서 꺼내시려는 거겠지. 나를 포함한 중생들은 그걸 못 알아듣고 계속 살던 대로 사는 거고...
# 물속 물고기들을 보면서
부둣가에 서 있었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그물로 된 틀이 있었다. 스노클링 가이드 말로는 거북이 한 마리가 간혹 여기에 출몰한다고 했는데, 이날은 안 보였다. 대신 물고기들이 뻐끔거리는 게 보였다. 문득, ‘여기 물고기들은 물밖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고기가 물 밖의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지구인을 포함한 우주인은 우주 바깥의 세상을 상상할 수가 있을까?
* 법화칠유(法華七喩) 중 화택삼거유(火宅三車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279
묘법연화경 권 제2, 3. 비유품(譬喩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