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상징인 이유, 발심, 공양
#20250716 #연꽃 #불교 #발심 #공양
작년 이맘때에는 왜 절 일을 해야 하고, 왜 법회에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한동안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부서 일로 연꽃 사진을 찍으러 부여 궁남지에 다녀왔다. 다음은 궁남지에서 스쳤던 생각들이다.
# 불교의 상징인 연꽃. 연꽃은 높고 쾌적한 곳에서 피는 게 아니라, 낮고 습한 곳에서 핀다. (고원육지高原陸地 불생연화不生蓮花 비습어니卑濕淤泥 내생차화乃生此花) 깨달음도 산속에서 혼자 절하고 기도하면서 오는 게 아니라, 산 아래에서 중생들과 같이 뒹굴면서 인식을 깨 나갈 때 온다(고 한다).
# 연꽃을 찍는데 연밥이 많은 걸 보니 이미 연꽃이 한 차례 피고 진 것 같았다.
흥망성쇠(興亡盛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제행무상(諸行無常)
연꽃을 깨달으신 분이나 법맥(法脈)에 비유하자면, 그때의 궁남지는 말법시(末法時)*는 아닌 것 같았다. 연꽃이 그래도 간간이 있었으니까. 시간이 지나서 연꽃이 다 지고 나면 그게 부처님의 뜻이 하나도 이어지지 않는 말법시겠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다시 연꽃이 만발하는 때가 올 거고, 그렇게 세상은 흘러간다. 나는 언제쯤 발심(發心)**을 할까? 이게 다 내가 몰라서 그렇다. 내가 괴로운 줄도 모르고, 무엇이 괴로움인 줄도 모르고, 괴로움이 사라진 게 뭔지도 모르고, 부처님께서 영원히 괴로움을 여의셨다는 것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 꽃 사진을 잘 찍는 것도 꽃 공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쁜 꽃을 보면 사람들 마음이 좋아지듯이, 예쁜 꽃을 잘 찍어 놓으면 사람들이 보고 좋아할 테니까. 꽃 사진 찍는 것도 부처님께 공양 올리듯이...
근데 말은 이렇게 해 놓고 정작 사진 찍을 땐 공양을 올리는 마음으로 찍지 않았으니 말짱 도루묵이다. 마지막에는 체력이 다 떨어져서인지(지금처럼 무더운 날이었다), 찍을 만해 보이는 꽃이나 꽃봉오리도 그냥 지나쳐버렸으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기회인데도 ‘에잇 몰라’ 하면서 그냥 지나쳤다. 부장님께서는 더 찍고 싶으신 것 같았는데, 내가 별생각 없어 보이니 더 찍진 않으셨다.
그때의 내가 많은 연꽃과 꽃봉오리들을 찍지 않고 그냥 지나쳤듯이, 생을 반복하면서는 얼마나 많은 선사(禪師)와 깨달으신 분들을 그냥 지나쳤을까. 지금도 믿지 않고, 행하지도 않고, 의심하는 마음만 내고 있으니. 이런 마음만 내는 제자-호소인에게는 천만 부처님이 내려와도 어쩔 수 없으실 텐데. 내가 마음을 안 내면 땡인데.
# 꽃잎을 다 떨어트리고 남은 연밥, 활짝 핀 연꽃, 피려는 연꽃, 꽃봉오리와 연잎.
= 깨닫고 가신 분, 깨달으신 분, 깨달으시려는 분, 깨달을 가능성이 있는 분과 보살(?)
영화 <매트릭스>에서 선지자 오라클 집에 있던 ‘그의 후보들’이 생각났다. 매트릭스의 규칙을 깰 가능성이 있는 존재들.
* 말법사상(末法思想): 불교의 유통이 시대에 따라 변천한다고 보는 불교 교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7826
** 발심(發心)=발보리심(發菩提心)=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