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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ap 76점

계(戒)와 습(習)

by 초이

#20250723 #Tmap #76점 #계 #습


5월 말 자동차 보험 갱신할 때의 이야기이다. 안내원이 Tmap 안전 운전 특약을 얘기하며, 76점 이상이면 5만 원을 할인해준다고 했다. 그때의 내 점수는 65점이었다. 안내원은 (빈말인지는 몰라도) 오래 타면 점수가 떨어진다고, 탈퇴하고 다시 가입하는 걸 추천했다. 재가입 후 1,000km만 타면 된다고, 자기도 매해 새로 가입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망설였다. 평소 나는 운전할 때 습관처럼 Tmap을 켜놓는데, 그렇게 쌓인 하루하루가 어떻게 보면 내 역사의 일부라 쉽게 버릴 수 없었다. 그냥 5만 원 할인 못 받는 셈 치기로 했다.


새로운 직장은 집에서 10km 남짓 떨어져 있다. 속도를 낼 필요도 없고 출퇴근 길이라 속도를 낼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운전할 때 과속/급감속/급가속을 안 하게 되었고, 몇 주가 지나자 Tmap 점수가 스멀스멀 올라 70점이 되어 있었다.


목표 점수가 별로 안 남은 것을 보고 계속 점수를 높여서 5만 원을 돌려받아야겠다 싶었다. 내 점수가 깎이는 주된 이유는 과속과 급감속인데, 특히 급감속이 점수가 많이 깎인다더라. 이 둘을 안 해야겠다 싶었다. 근데 이걸 신경 쓰기 시작하니 괜히 더 어려워졌다. 앞차가 언제 브레이크를 밟을지 모르니 차간거리를 띄우게 되고, 과속하지도 않게 되었다.


신경을 쓰니 다행히도 점수가 금방 올랐다. 기다리던 76점이 되자마자 바로 보험사에 전화했다. 안내원은 턱걸이라며 축하한다고, 환불받을 계좌를 알려달라고 했다. 돈이 들어오기까지 며칠이 걸릴 수 있다더니 바로 들어왔다. 갱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5만 원에서 많이 깎이지도 않았다. 아주 뿌듯한 4.9만 원이었다.

KakaoTalk_20250705_110006949_02.jpg 와 돈이다!


점수를 넘겼으니 내년 보험 갱신 때까지는 점수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괜히 점수도 신경 쓰게 되고, 안전 운전이라는 습관도 남아서 점수가 계속 오른다. 7/1에는 76점이었는데, 7/19에는 86점이 되었다.

KakaoTalk_20250719_203621855_04 브런치용 수정.png 45점에서 86점이 되기까지



이를 수행과 연관 지어 보았다. 76점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과속하지 않기, 차간거리 유지하기 같은 계(戒)를 세웠다. 며칠 노력해서 목표를 이뤘고, 나는 더 이상 점수에 매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계속 점수를 신경 쓰게 되고, 안전하게 운전하는 습(習)도 남았다. 점수가 올라서 기분은 좋고 또 안전한 습관이지만, 뭔가 거꾸로 되었다. 목표를 달성하면 수단도 사라져야 하는데 잔상이 남았다. 계를 지키는 것은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인데 되려 얽매이다니?

KakaoTalk_20250705_110006949_01.jpg 괜히 이런 게 보이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지만, 또 하나의 얽매임일 뿐...


원래는 습을 없애기 위해서 계를 세우고, 습이 사라지면 계도 놓아야 한다. 계를 지키는 것이 좋다고 계속 붙들고 있으면 거기에 또 매이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하는데 어느 하나에 집착해서 무엇하리? 상황에 맞게 쓰고 나면 미련 없이 놓아야 하는데. 좋다, 아깝다는 생각에 계속 놓지 못한다. 내가 점수에 집착하는 것처럼.


나는 또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고 하나씩 놓아서 어제보다 자유로운 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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