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들어도 들은 바 없이

by 초이

#20260204 #공(空)


고등학생 때 나는 매우 까칠했다. 성적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면서 예민하기만 했다. (특목고임에도) 생각보다 공부에 진지(?)한 아이들이 없다는 것과, 그 진지하지 않은 아이들이 나보다 성적이 잘 나오는 걸 보면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더 채찍질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나만 채찍질하면 되는데, 그 채찍질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향했다는 점이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속닥거리는 애라도 있으면 노려본다거나, 분위기가 점점 산만해지면 책상을 주먹으로 쾅 하고 내려치기도 했다. 반장도 뭣도 아니었던 내가 그랬던 걸 생각하면 아주 부끄럽다. 작은 소리에 매여서 화를 키운 건 내 몫이었는데 말이다.


처처도량(處處道場)이라! 수행자에게는 모든 곳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바로잡는 곳이어야 한다. 모든 곳이 그래야겠지만, 부처님을 모신 절에서는 특히나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걸음걸이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과 인사하고 얘기할 때도 그렇고. 공양할 때도 그렇고, 법당에서도 그렇고.


이번 법회 날은 수계식(授戒式) 등 여러 행사가 있어서 그랬는지 사람도 많고 북적북적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도 오래간만에 만나서 들뜬 분위기였다. 밥 먹을 자리가 부족해서 모르는 어르신께 양해를 구하고 옆에 앉았다. 반갑고 즐거운 분위기에 떠들썩한 것도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공양간도 도량(道場)인데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다른 생각이 스쳤다. 소리도 변하는 것인데, 내가 소리가 ‘있다’는 생각에 매여서 괜한 생각을 했구나. 깨달은 이라면 (소리도 공한 것을 알아서) 들어도 들은 바가 없지 않을까? 크게 떠들면서도 떠든 적이 없고, 들어도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봐도 본 적이 없고, 맡아도 맡은 적이 없고, 닿아도 닿은 적이 없을 것이다. 마음에 남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했던 고등학생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아이들은 그때의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고두고 미안할 일이다. 또, 나는 ‘도량은 이래야 한다’라는 생각에 갇혀있기도 했다. 사람들이 기분 좋게 어울리는데 심술궂게 마음을 낸 것도 내 문제다.




그런 걸 생각하면 “지금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하고 사람을 죽인 궁예는 미륵보살이 아니라 한참 모자라지 않나? 정말 미륵보살이었다면 중생이 무슨 연유로 기침 소리를 냈는지를 다 알고, 정말로 아파서 나온 기침이라면 안타까이 여기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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