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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Dec 12. 2020

<트루먼 쇼> (1998)

“사람들이 다 날 알고 있어”

#20201118 #트루먼쇼


 태어난 지 10,909일이 되는 날. 평화롭게 지내는 트루먼 앞에 ‘시리우스 몇 번째 별’이라고 이름이 적힌 전등이 하나 떨어진다. 하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라디오에서는 평화롭게 음악이 흘러나오고 트루먼은 보험설계사로서 보통의 일상을 보낸다. 그러나 그에게는 남모를 사연이 있었는데, 바로 대학생 시절에 만났던 여성을 찾아 Fiji island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과 대화하면 안 된다'라는 의문의 말만 남기고 황홀한 입맞춤을 남긴 채 아버지라는 사람과 함께 사라진다.

저 황망한 눈빛...


 어떻게 해서든 현재의 삶을 벗어나려는 트루먼에게 갖가지 일이 생긴다.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눈앞에 나타나고, Fiji island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려고 해도 한 달 뒤에나 갈 수 있고, 버스를 타니 버스가 고장 난다. 출근하다 말고 옆 건물에 들어가니 엘리베이터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뒤에 공간이 있고, 라디오에서는 자신을 감시하는 듯 마침 자신이 지나고 있는 거리의 이름이 나온다. 무심코 지나쳤던 거리에서는 같은 사람들이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고 있고, 조금 전까지 막히던 길은 로터리를 몇 번 돌고 나자 뻥 뚫려있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고, 도망치려고 하자 다들 붙잡으려고 달려든다. 와이프는 뜬금없이 코코아에 관해서 설명하고, 칼을 들기에 저항하니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기 시작한 트루먼


 믿을 사람 하나 없다. 트루먼은 탈출을 감행한다. 바다 위에서, 새벽에 갑자기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트루먼은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미친 건가, 세상이 미친 건가?’ 이렇게 혼란스러울 바에야 정말로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바람이, 파도가 미친 듯이 거세도 그는 굴하지 않고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 세상의 끝에 다다른 트루먼. 세상 밖으로 나가는 문 앞에서 그는 조물주의 소리를 듣는다(아, 이젠 환청까지?). 조물주는 ‘너는 스타’라며 보장된 삶으로 달콤하게 유혹하지만, 트루먼은 이미 바깥으로 가는 문을 열었고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마지막 인사를 한다. “In case I don’t see ya, good afternoon, good evening and good night.”     

상쾌한 표정으로 인사를 마치고 그는 떠난다.



 트루먼이 겪은 이상한 일들은 실은 정신과 질환의 증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있어서 포옹도 하고(환시, 환촉, 환청), 내가 타려는 비행기나 버스는 이용할 수 없고(나 때문에? → 관계 사고). 옆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겉모습만 엘리베이터일 뿐 뒤에 공간이 있고(환시), 라디오에서 자신의 얘기가 나오고(사고 전파), 같은 사람들이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거나 조금 전까지 막히던 길은 로터리를 몇 번 돌고 나자 뻥 뚫려있다(착각 or 환각).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고(관계 사고), 도망치려고 하자 다들 붙잡으려고 달려든다(피해 사고). 와이프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물건을 설명하거나 도움을 요청한다(환각). 만약 트루먼이 정신과 환자이고, 모두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게 현실이 아니라 그의 증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정신과 환자들이 얼마나 괴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 이해할 수도 있다.


 트루먼은 결국 문을 열고 자신의 세상 밖으로 나간다. 조물주가 그를 유혹하지만, 트루먼은 늘 하던 인사로 대답을 대신한다. 이 장면에서 부처님의 생애 중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닫기 직전의 싯다르타와 마왕 파순이 떠올랐다. 마왕 파순은 싯다르타가 해탈하지 못하도록, 윤회의 세계에 남도록 회유하고 협박하지만 싯다르타는 흔들리지 않고 해탈에 이르지. 영화 「매트릭스」의 사이퍼는 결국 빨간 육즙이 흐르는 스테이크에 동료들을 팔고, 자신을 매트릭스에 남겨달라고 했지만, 트루먼은 결국 떠난다. 조물주가 주겠다는 삶은 자신이 원하던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비아를 찾아서, Fiji island로 떠났다. 세상의 밖에서 그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냐고? 글쎄 아마,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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