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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Mar 14. 2021

<이터널 선샤인> (2004)

기억을 지워도 지울 수 없는 게 있나?

#20210314 #무의식 #기억


 언젠가 한 번은 봐야지 했던 영화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큰 줄거리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연인과 헤어지고 너무 괴로워 그에 관한 기억을 다 지웠음에도 다시 만나는 영화라고 해서, 문득 아이스링크에서 부메랑을 던지던 권상우가 떠올랐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정신과 전공의로서는, 영화를 보기도 전에 ‘같은 관계의 반복’이라는 점에서 정신분석의 용어 중 하나인 repetition compulsion(반복 강박)이 떠올랐다. 쉽게 말하자면 한 사람에 있어서 반복되는, 특히 사람과의 관계의 무언가이다. 예를 들면, 매번 술/폭력 문제가 있는 사람을 만나서 고생한다거나, 한 사람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상대를 찾아 헤맨다거나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기억조차 없는 어렸을 때의 중요했던 사람(주로 부모)과의 관계가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을 뿐 반복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반복되는 관계가 그 사람에 있어서 많은 불편감을 유발한다면 스스로도 불편하게 생각하고 고치려고 하겠지만, 대개는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른 채 그냥 살아간다.

반복의 고리를 끊으면 이전과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한다.



 아는 얼굴이 많이 나와서 놀랐다. 짐 캐리, 「스파이더맨」의 MJ, 헐크,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까지. 영화는 크게 두 축으로 나뉘어 현실 세계와 주인공 머릿속에서 현재와 과거(추억)가 뒤섞여 흘러간다. 현실의 주인공은 자면서 기계로 연인의 기억을 지우고 있지만, 머릿속의 그는 기억 지우기를 멈춰달라며 지워지는 것을 피해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도망치기도 한다. 하지만 지워지는 과정을 멈출 수 없었고, 마지막의 두 사람(주인공과 주인공이 기억하는 연인)은 체념한 듯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웠지만, 주인공은 ‘왠지 모르게’ 떠나야 할 느낌이 들었고 그곳에서 ‘왠지 모르게’ 끌리는 여인을 만났으며 그게 알고 보니 연인이었던 사람이었다니!

나의 무의식 어디와 부딪혀서 상대에게 끌리는 걸까?


 영화에는 특정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울 수 있는 기계가 있다. 머리에 전극을 붙이고, 기억을 떠올릴 만한 물건들을 보게 한 뒤,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확인하고, 수면제로 재운 뒤 활성화되었던 부분을 지워간다. 실제로 functional MRI; 기능적 MRI를 이용해 사물의 인식이나 기억이 뇌의 어떤 부위들과 연관되어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사과로 예로 들면, MRI를 찍으면서 실시간으로 사과를 보여주거나 떠올리게 하고, 활성화되는 부위를 확인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잠에서 깨어난 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로 봐서 적어도 의식 수준에서는 연인을 다 지웠다. 하지만 무의식은 어떡하지? 영화에서처럼 ‘왠지 모르게’ 끌리는 건 어떡하지? 무의식에 있던 것도 인식하는 순간 의식에 있게 되는데, 무의식은 뇌의 어느 부위에 있는 걸까? 아니면 특정 세포나 신경전달물질로 저장되는 1:1의 개념이 아니라, 세포들의 어떤 서열로 남는 걸까? 아니면 Jung의 집단 무의식이 실존하기라도 하는 걸까?

google에서 찾은 fMRI의 예시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다. 꼭 연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가족, 친구, 동기, 동료, 선후배, 선생님, 손님, 등등... 인생에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있다. 단순히 몸이 멀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이 멀어지기도 한다. 누구와도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 나오는 어떤 구절처럼, 우리는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상대와의 추억을 한데 모아 꼭꼭 숨겨 놓고, 다시 들여다보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갖고 있었던 적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버리던데, 당시의 내 좁은 소견으로는 마음에 없으면 그 물건들을 가지고 있든, 없든 상관없을 거라며 가지고 있었다. 그 자체가 미련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알고 나서는 다 버렸는데, 버리면서 다시 보니 마음에서 일어나는 게 있었다. 정말로 상대에 대한 마음이 없다면, 물건을 봐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상대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을 거다. 그때는 밀어내기 급급했으니,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니라 밀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거였다.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그 순간의 마음을 전했다면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니, 나는 영혼이 빠진 시체만 갖고 후회나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는 그 사람을 떠올릴 만한 물건들을 다 가져와서 뇌의 어느 부위가 반응하는지를 본다. 그 물건들은 어떻게 되는지 나오지 않았다. 근데 만약 선택적으로 기억을 지워줄 수 있다면, 그 물건이 눈에 띄든 말든 상관없지 않을까? 클레멘타인도 추억의 장소에 가서 왠지 모를 우울감에 빠지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을 다 지운다고,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예전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있어서 그때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운명’이라는 식으로 글을 썼는데, ‘그때 그 사람’의 개념은 사람의 만남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모든 것에 해당해서, 한 개체는 그 직전의 자신과 어떤 방향으로든 다른 존재가 되는 것 같다. 그게 발전일 수도 있고, 퇴보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변한다는 거고, 두 개체의 만남은 어떻게든 흔적을 남긴다는 거다. 예를 들어 코로나 백신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기 전의 나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읽은 후의 나는 백신에 대한 걱정이 늘었고 그만큼 달라졌다는 식이다. 그래서 특정 기억을 지운다고 해도 나는 이미 그 기억을 갖기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기에 되돌아갈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반복되는 무언가가 있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영화의 주인공들이 다시 만났던 것처럼 말이다.


 내 마음속에 무의식이 어떤지 알 수 없는 한, ‘왠지 모르게’ 끌리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싶다. 말 그대로 ‘왠지 모르게’ 끌리는 거니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생각하고, 글을 쓴다.




p.s.

"Joely? What if you stayed this time?"
"I walked out the door. There's no memory left."

(없었던 일을 만들어서 기억할 수는 없겠지)

 내가 사랑하는 그대는 실제의 그대일까, 내 마음속의 그대일까? 내가 아는 그대와 실제의 그대가 같아지는 순간이 올까? 가끔은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 그대를 사랑하는 게 아닌가 싶어. 그 갭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대화해야겠지만 말이야. 서로가 서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는 없고, 하나의 자극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서로가 서로를 바꿀 수 없겠지.


"Okay"

 지지고 볶고 해도 결국은 두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이야기.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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