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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pr 04. 2021

<인셉션> (2010)

꿈을 통해 무의식에 다가가다.

#20210403 #꿈 #무의식


“An idea is like a virus. Resilient, highly contagious. The smallest seed of an idea can grow. It can grow to define or destroy you.”
“생각은 바이러스처럼 생명력이 강해, 전염성 강하고 원대한 계획의 씨가 되기도 하지. 한 사람을 규정하거나 파괴하기도 해.”


 프로이트는 말했다. “꿈은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라고. 영화에 나오는 도미닉 코브는 꿈을 통해 다른 사람의 정보를 캐내는 첩보 요원이다. 코브는 꿈속에서 사이토의 비밀을 캐내려다 실패하고, 오히려 그에게 일을 제안받는다. 평소처럼 정보를 빼내는 게 아닌, 사이토의 경쟁 회사 후계자인 로버트 피셔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서(inception) 회사를 조각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일에 성공하면 코브는 딸과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코브는 사람을 모아서 계획을 진행하지만, 피셔는 무의식을 방어하도록 훈련되어있었고, 의도치 않게 등장하는 코브의 무의식적 대상들 때문에 계획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도로 한복판에 웬 기차가...?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가는 것은 그 사람의 무의식에 다가가는 일이다. 몸에 세균이 들어오면 백혈구가 잡아먹듯, 꿈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그 사람은 무의식의 공격을 받는다. 꿈속에서 죽으면 꿈에서 깨기 때문에 무의식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도미닉은 상대방의 꿈속에서 상대방의 무의식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적 대상도 피해 다녀야 한다. 그의 일을 자꾸만 방해하는 것들은 그의 아내였던 맬과 그녀와 관련된 대상들이다. 아까의 그 기차도 원래는 도미닉과 맬이 림보에서 빠져나올 때 소환되었던 것이었다.

무의식을 자극하면 주목받게 되어있다.


 정신치료는 한 사람의 무의식을 다루는 치료다. 환자의 반복되는 문제가 보이더라도 섣부른 직면이나 해석을 보이면, 환자는 의식적으로(ex. 치료 시간에 늦기, 나타나지 않기), 혹은 무의식적으로(ex. 몸이 아프다, 이유 없이 불안하다) 저항을 보이면서 도망갈 수 있다. 따라서 치료자는 환자의 무의식이 놀라지 않도록 타이밍을 잘 노려서, 환자의 문제가 거의 의식에 다다랐을 때(환자의 문제가 의식에 다다르는 걸까, 아니면 환자의 의식이 문제에 다다르는 걸까?); 환자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러한 치료 방법들을 써야 한다. 또한, 환자의 치료에 치료자의 무의식이 방해할 수도 있기에 치료자는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그를 위한 자기 분석(self-analysis)을 받아야 한다.

(사진은 영화와 관련 없음) 정신치료는 한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고, 더 적응적으로 살게 해 준다.


 꿈속 세계는 자신의 마음대로 만들 수 있기에 현실과 구분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꿈을 드나드는 사람은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 위한 토템이 필요하다. 도미닉의 아내인 맬의 토템은 팽이였고, 도미닉은 자신의 것이 아닌 이 팽이로 꿈과 현실을 구분한다. 아니, 구분하고 있다고 자신을 속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현실/꿈을 받아들이고 싶었나 보다. 현실이라면 팽이가 쓰러지겠지만, 꿈이라면 자신이 바라는 대로 팽이가 계속 돌게 할 수도(꿈으로 받아들일 수도), 쓰러지게 할 수도(현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까. 영화의 결말이 현실이다/꿈이다 논란이 많았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도미닉의 토템은 도미닉의 손에 있는 그것이다.

유명한 팽이 사진. 도미닉이 갖고 다니지만 맬의 토템이었다.




 그놈의 무의식. 무의식이 대체 뭐란 말인가? 영화에서는 실은 subconscious; 잠재의식이라는 용어를 쓴다.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주창한 unconscious; 무의식은 글을 쓰는 지금의 내가 이해하기로는 ‘경험의 총체’ 중 떠올릴 수 없는 부분이다. 한 사람이 그에게 일어난 일로부터 눈, 귀, 코, 혀, 몸(전오식, 前五識)으로 받아들인 것들과 기억들로 생각하는 것까지(육식(六識); 의식(意識)) 모두가 경험으로 볼 수 있다. 경험은 단순히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해 ‘무엇을 했는지’라는 올더스 헉슬리의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신이 준 선물인 망각(忘却) 덕분에, 한 사람이 의식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며 의식되지 않은 부분들은 무의식에 잠긴다. 현대 정신분석에서는 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경험한 것에 대해서 무의식이라고 하지만, 불교의 관점에서는 영혼이 윤회하므로 영혼에 함장(含藏)되어 있는 것, 그 이상까지 뭉뚱그려서 무의식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현대 과학으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라 대치할 용어가 없다. 영화의 림보**가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무의식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융의 집단 무의식에 비교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보는 것은 파란 하늘이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별이 있듯, 우리가 볼 수 있는(의식하고 있는) 부분은 매우 적을 수 있다.


 타깃이 회사의 후계자이고, 그의 회사를 조각낸다는 영화의 흐름 때문이었겠지만, 분석에 관심이 많은 필자로서는 일부러 ‘아버지와의 갈등’을 다룬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정신치료는 pre-oedipal period의 문제를 다뤄 주로 어머니와의 관계를 많이 다룬다는데, 프로이트의 고전적 정신치료는 oedipal complex를 얘기하며 아버지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어쩌면 삶의 기준 같은 존재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우리가 정상적인 일상생활에서 충족시키지 못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어난다. 융은 꿈이 의식 수준에서는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드러나는 장소라고 했다.*** 불교에는 몽중대작불사(夢中代作佛事)라는 말이 있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꿈이며 환상이자 거품이고 그림자다.**** 하지만 꿈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중생인 우리에게는 허깨비가 아닌 실재이기 때문이다. 바르게 가질 수 있는 건 다 갖되, 그것이 인연·연기에 의해서 생긴 것임을 알고, 영원하지 않으니 애착·집착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p.s.

 영화 속의 맬은 현실이 꿈인 줄 알고 꿈에서 깨기 위해 창가에서 뛰어내린다. 하지만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죽어도 깨지 못하는 꿈을 꿈인 줄도 모르고 헤매고 있다. 생사의 고리끊지 않는 한 영원히 깨지 못할 꿈이다. 꿈속에서는 부자이든 거지든, 한 나라의 왕이든 범죄자든, 천재이든 둔재이든 상관없다. 그냥 그 꿈을 잘 꾸고 깨면 끝이다. 하지만 깨려야 깰 수 없는 꿈이라면? 영원히 지속되는 꿈이라면 끔찍하지 않을까?


p.s. 2

 맬이 다 꿈이라고 여긴 것처럼, 문득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BPD) 환자들의 basic trust도 그런 건가 싶다. BPD 환자들은 상대에 대한 basic trust가 거의 없어서 끊임없이 상대를 의심하는데, 모든 걸 의심하는 건 아니다. 자신이 버림받을 불안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고오히려 그런 낌새나 증거에는 매우 예민하다. 그래서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괜찮았던 관계에 대해서는 쉽게 잊어버리고, 그런 관계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 쪽에 맞춰서 현실을 심하게 편향되게(어떨 때는 왜곡해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관계는 없다. 원래 사람은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다. 사랑하던 이와의 헤어짐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다. 간혹 헤어짐은 어쩔 수 없는 건데, BPD 환자들은 이에 대해 너무 상대를 탓하거나, 자신을 탓해서 오히려 헤어짐을 더 재촉하는 것 같다. 


 맬의 팽이가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 그래서 현실조차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BPD 환자들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림보에 들어가, 계속 돌아가는 팽이 토템을 눕혀놓고, 괜찮다고, 버림받는 게 아니라고 해주고 싶다. 


* “Experience is not what happens to a man; it is what a man does with what happens to him.” - Aldous Huxley

** Limbo; “Unconstructed dream space. just raw, infinite subconscious. Nothing is down there. Except for whatever that might have been left behind by whoever's sharing the dream who was trapped down there before.” - https://inception.fandom.com/wiki/Limbo)

*** 김인수, 「꿈의 분석」, 『정신의학신문』, 21.03.28 -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0701

**** 금강경 사구게(金剛經 四句偈),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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