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영석 PD가 나온 짤을 보았다. 예전에는 대단한 사람이 대단해 보였는데, 요즘은 강호동을 보며 오랫동안 꾸준한 사람이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한다. 나는 거기서 친한 동생 S를 떠올렸다.
처음 만났을 때의 S는 나와 체형(體型)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리하지 않은 평범한 20대 남성의 몸. 어느 날 갑자기 S는 운동을 하겠다면서 모임에 닭가슴살을 들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SNS에 자신이 운동하는 사진과 영상을 올리면서, 많은 사람들과 팔로워/팔로잉을 하며 소통하기 시작했다. 나는 S가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떴거나. 아니면 관심받고 싶은 마음이 저런 식으로도 표출될 수 있구나 싶었다. 모임에서도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쉬지 않고 SNS의 알림이 울리는 그의 핸드폰, 계속해서 댓글을 달고, 좋아요 반사를 하며 팔로워에게 신경 쓰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참 별나다 싶었다.
S가 운동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지났을까, 지금 그의 몸은 아주 탄탄하고 멋지다. 나는 그동안 뭐 했나? S가 몸에 투자한 만큼, 같은 시간 동안 나도 무언가를 하며 노력했다고 하고 싶었지만, 내게서 눈에 띄는 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대신, 멋지게 달라진 S를 보며 내 안에서는 다른 게 자랐다. 반년 전에 다른 동생들과 S의 얘기를 하면서 나는, ‘그렇게 몸을 만들어서 뭐 하나, 쓸모없다’라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마음에 계속 남았다. ‘왜 나는 그때 그런 식으로 말했지?’ 동생들에게 전화해서 그런 의미로 얘기한 게 아니라고 말을 해야 하나?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계속 찝찝했다.
지난 학기에 나는 의국에서 교육 담당 전공의였다. 병원으로 실습 나오는 의대 학생들을 관리하기도 했지만, 후배 전공의들이 환자에 관해서 고민할 때, 후배와 같이 고민하기도 해야 했다. 나는 후자의 일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한 후배 전공의가 술자리에서 내게 그 얘기를 했다. 내 동기는 물어보면 교과서도 같이 찾아보고, 자신이 아는 걸 알려주는데, 나는 교육 담당이면서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책은 찾아봤냐’라고만 묻는다고 했다. 부끄러웠다. 동기에게 밀렸다는 라이벌 의식도 있었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같이 찾아보지 않고, 그냥 책 찾아봤느냐고만 했을까?’ 내가 무언가를 회피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생각해보니 그때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내가 2년 차일 때도 다른 전공의들이 얘기하면, 나는 귓등으로 듣거나 내 일, 소일거리를 하면서 별로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전공의들끼리 얘기하면서 나름 적절한 답을 찾아가기에 그냥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싶었다. 내 의견을 꺼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었고. ‘첨언(添言)해서 뭐 하나’ 하는 생각에 말을 삼켰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모른다고 얘기하기도 부끄러웠다. 모른다는 걸 들키는 게 부끄러웠다.
내가 후배 전공의에게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아차리자, 내가 S에게 느꼈던 감정도 비슷했다는 걸 알았다. 결국 부끄러움이자 부러움이었다. Jung의 용어를 빌리자면, 그게 내 그림자였다. S의 몸이 그런데 내 몸은 어떻지? S가 몸을 그렇게 만들 동안에 나는 뭐 했지? 부끄러웠다. 근데 그걸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의 결과물을 끌어내렸다. 사실 그가 부러웠고, 그를 질투했는데 내가 그걸 몰랐다. 알고 나니까 S에게 많이 미안했다. S가 느꼈는진 모르겠지만 부러운 마음을 그렇게 안 좋게 갖고 있었으니, 아마 내가 S를 대하는 태도에서 은은히 묻어났을 것 같았다.
S는 지금도 꾸준히 SNS를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건 그만둔 것 같지만, 자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공부하는 걸 뭐 저렇게 티 내나 싶다가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고, 운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미치면 그저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이 이젠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후에 S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다. “S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꾸준히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고 운동할 수 있니?” S의 대답은 간단했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서 그래요” 어떤 꿈이기에 그렇게 강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게 마음을 낼 수 있다는 게 부럽고, 대단하다. 이제는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거라도 꾸준히 하는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의 성실을 함부로 얕잡아 보지 않는 것. ‘나는 해 봤는가?’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직접 해 봐야 그 어려움을 알지. 언젠간 S의 꿈이 꼭 이뤄지고, 나도 S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결론은 한 가지다. 나 자신이 안 변하면 아무것도 안 변한다는 것이다. 변하는 것이 일류로 가는 기초다. -「스물일곱 이건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