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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Mar 31. 2021

행동 활성화 치료와 불교

Behavioral activation (BA)

#20210331 #행동활성화치료 #BA #불교


 매주 화요일 오전마다 하는 Journal club 시간에 Behavioral activation(BA); 행동 활성화 치료에 대해서 접할 기회가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행동 활성화 치료는 행동 치료(Behavioral therapy)의 일종인데, ‘환자의 행동을 바꾸면(활성화하면) 증상이 좋아진다’라는 개념이다. 환자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 하루 동안 어떻게 지내는지 시간별 일지(daily form)를 작성해서 반복되는 부분을 찾고, 환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life area, value)를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행동(activities)을 해야 하는지를 환자와 의사가 함께 고민하고 수정해가는 과정이다. 행동 활성화 치료는 특히 우울증을 치료함에 있어서 약물치료 혹은 인지치료와 유사한 정도의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한다. 


 불교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다. 반복되는 자신의 습(習)을 찾아내고(daily form - 자신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객관적으로 보고), 자성계(自省戒)를 세워 고쳐가는 것(values, activities – 고치고 싶은 게 뭐고, 그걸 고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건지)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 활성화 치료에서는 activities를 할 시간을 정하고, 그때 했는지를 적음으로써 자신에 대해서 객관화할 수 있게 한다. 


activities는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하며, 간단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자성계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자신에 대해서 알고불편한 점을 고쳐가는 것’은 정신치료(PT)도 마찬가지인데, 정신치료는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이전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을 (치료자가 방법을 제시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하기에, 깨닫는 수준(생각)에만 머무를 수도, 행동의 수정까지 이뤄질 수도 있다. 이는 환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인지) 행동 치료는 처음부터 치료자가 환자와 함께 환자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환자가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하며(by hierarchy), 그걸 하나씩 부딪혀나가게 시킨다. 행동을 바꾸게 ‘시킨다’라는 점에서 정신치료와 다르다. 




 정신과의 치료들을 보면 불교의 개념이 간간이 보여서 신기할 때가 많다. ‘깨어있으라’라는 말은 예수님만 한 게 아니라 부처님도 했는데, 흘러가는 마음에 대해서 알아차리라는 의미이고 이는 mindfulness(마음 챙김)였다. 조금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면 mentalization(마음 헤아리기)이 된다. 행동 활성화 치료도 습(習)을 알아차리고 자성계(自省戒)를 세워 고쳐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불교가 대단하다’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잘 모르지만 스스로 규칙을 세워 지켜나가는 것은 다른 종교에도 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있던 개념이 ‘치료’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는 것은 마치 한약(韓藥)과 양약(洋藥)의 관계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한약이 효과가 있다는 건 경험적으로는 알 수 있었지만, 어떤 성분들이 어떻게 해서 그런 효과를 내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과학이 발전해서야 한약재의 특정 성분이 몸의 특정 부위에 작용해 효과를 낸다고 각종 실험을 통해 알게 되었고, 그 특정 성분을 뽑아서 만든 게 양약이다. 그마저도 완전하게는 알지 못해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지만. 한약이 효과가 없다는 게 아니라, 과학적으로 더 효율적인 것을 만든 것뿐이다. 부처님의 법문도 시대에 맞게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부처님의 법문이 과학을 만나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게 부처님께서 하고자 하신 게 아닐까? 

약재가 가진 성분 전체를 쓰느냐, 특정 성분만 뽑아서 쓰느냐의 차이일 뿐. 


 다만 핵심 가치는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신 이유는 중생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게 하고자 하신 것이었다. 한약이든 양약이든 환자의 증상을 낫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듯, 습을 알아차리고 자성계를 세워서 고쳐나가는 것이 과학을 만나 행동 활성화 치료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다. 원래 습을 고치는 것의 목적은 해탈에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냥 자신의 삶을 좀 더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의의를 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Reference>

Carl W. Lejuez et al, 「Ten Year Revision of the Brief Behavioral Activation Treatment for Depression: Revised Treatment Manual」, Behavior Modification, 35(2):111-6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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