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is my missing piece?
#20210503 #이상형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도 나와 정말 잘 맞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그런 사람 한 명쯤 없겠어?’ 그 사람은 나와 아주 비슷해서, 말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알아차리고, 내 기분을 잘 알아준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으면 한다. 실은 그 사람은 매우 만나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다. 아니,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냥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단어 그대로 이상형(理想型)이랄까?
‘100% 딱 맞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그 100%가 맞을지 계속 의심하지 않을까? 책 「Love Factually」에서는 ‘missing piece’ 식 생각이 디즈니 만화영화의 폐해라고 했지만,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부분 같다. 여러 사람 중에 잘 맞는 사람을 찾으면 좋으니까. 안타까운 건 사람은 계속해서 변하는 존재이고, 기억은 계속해서 미화되는 데다가, 한 번에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은 도의적인 문제가 있어 여러 사람을 같은 시간대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는 거다. 또한 상술했듯이, 사람은 계속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잘 맞다’, ‘잘 통한다’는 건, ‘그때의’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잘 맞다는 얘기이기도 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맞춰가지” 않으면 그마저도 잘 안 맞게 될 수 있다.
지인의 연애 상담을 해준 적이 있는데, 지인의 전 남자 친구는 100%에서 시작해서 안 맞는 부분이 있을 때마다 점점 깎아간다고 했고, 지인은 하나씩 맞춰간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 전 남자 친구처럼 생각했다. 처음에 콩깍지가 씌었을 땐 다 맞아 보였지. 다른 부분이 있었어도 무시했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거다. 처음에는 다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도파민의 마법이 끝나갈 때면, 안 맞는 부분들이 점점 크게 보이면서 멀어졌다. 상대는 변하지 않았는데, 상대를 보는 내 눈만 변한 것일 수도 있고, 내 눈을 믿지 못해서 한결같은 상대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박총 작가는 「읽기의 말들」에서 ‘온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모든 이해는 오해라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콩깍지도 상대를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받아들인 긍정적인 오해의 결과 아닌가. 긍정적인 오해나 부정적인 오해는 누구에게나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누구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거다. 그건 인식을 가진 중생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 내 오해를 실제 상대의 모습과 가깝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내가 아는 그 사람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 사람의 이미지도 고집할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미지를 고집해서, 내가 알던 모습과 다른 모습이 보이면 못 받아들이고 괴로운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Edmund Husserl은 ‘Epoche’라는 개념을 꺼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누군가를 잘 통한다고 생각하고 만난다 한들, 그 사람은 그때의 나에게 잘 맞고, 그때의 내가 긍정적인 오해를 한 사람이겠지.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로 변해서 안 맞을 수도 있어. 그건 중생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맞고 안 맞고 자체도 중요하고, 또 많은 부분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야 덜 싸우겠지만, 얼마가 맞아서 시작했든 누군가와 함께하겠다는 건 상대방과 계속해서 맞춰나가는 과정임을 (적어도 머리로는) 알고, 각오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29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