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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n 17. 2022

면담에 대한 단상(斷想)

끊임없는 회의(懷疑)

#20220617 #사촌동생과의대화중 #정신의학 


* 정신치료(psychotherapy), 일부 우울 및 적응의 문제 등과 관련된 글입니다. 


 치료자는 환자의 상황에 대한 답을 함부로 내려주지 않는다. 환자가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내길 바란다. 그리고 환자가 그 길을 찾을 때까지 곁에서 같이 견뎌준다. 이쪽이 답 비스무리한 걸 들고 있기는 하지만, 환자가 그와 비슷한 말을 해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될 때까지 알려주지 않는다. 어차피 알려줘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못 받아들일 거라고. 환자의 삶을 치료자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지 않느냐면서. 그게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고 배우고 또 그렇게 생각했다. 


 요새는 조금 회의적이다. 그게 맞을까? 치료자가 생각한 답이 언제나 ‘정답’일까? 틀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답은 누가 옳다고 해주나? ‘환자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을 때’라는 것도 치료자가 생각하기에 그런 때인 거고, 치료자가 생각한 답에 근접했을 때인 거잖아. 자기가 떠올린 생각과 비슷한 거라면 쉽게 수긍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정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치료자도, 환자도 모른다. 그래서 '좀 무책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은 네 안에 있어’라며 환자가 답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양, 치료자는 마치 답을 알고 있는 양 뻐기지만, 사실 이쪽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진데. 혹자는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거라고 한다. 얘기를 털어놓는 것(ventilation)도, 들어주고 같이 견뎌주는 것도 (물론) 돕는 거지만, 궁극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지 않나?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은 결국 환자이고, 치료자는 환자를 보면서 답답해할 수밖에 없지는 않은지. 


 내 앞에 힘들어하는 이 사람이 어떻게 해야 낫는지 모른다면, 약도 면담도 결국은 시간을 벌어주는 것뿐이 아닐지? 환자 속에 어떤 complex가, stressor가 있는지 모르는데. 겉으로 드러난 증상들(i.e. 우울, 불안, 불면 등)은 약으로 조절하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면담으로 좀 더 객관적으로 본다 치더라도, 환자가 처한 상황이나 그걸 받아들이는 환자의 생각은 치료자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그건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다. 바꾸거나, 받아들이거나. 약과 면담은 환자가 그렇게 할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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