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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l 13. 2022

자존감 이야기

나는 나를 어떻게 보는가? 

#20220710 #오래된차 #수영 #자존감


 티맵 점수가 66점에서 오르지 않는다. 급출발이나 급정거는 없는데, 과속이 문제다. 하긴, 차가 없으면 140~150km/h를 밟고 가니 그럴 법도 하다. 예전 차인 카니발로는 130km/h 정도가 최대였는데 지금 차는 그래도 좀 더 최근에 나왔다고 조금 더 잘 나간다. 


 자연스레 예전 차로 생각이 옮겨갔다. 2003년식 카니발 II. 어렸을 때부터 탔던 차를 물려받아서 몰았다. 당시의 나는 1년 차가 운전해야 한다는 의국 전통 덕분에 반강제로 운전을 하게 되었다. (바로 윗년 차 선생님들께서 운전을 해주셔서 내가 직접 차를 몰 일은 많지 않았다) 차 자체가 오래되어 낡기도 했지만, 병원 주차장에 들어가면서 벽 모서리를 긁어 오른쪽 문이 찌그러지고, 주차해놨던 차를 빼면서 기둥을 긁어 왼쪽 문의 몰딩이 떨어지기도 했다. 몰딩을 다시 하려면 문 자체를 갈아야 한다기에, 그럴 바에는 그냥 타야겠다 싶어 그냥 타고 다녔다. 그렇게 4년을 탔다. 


 누군가는 그런 내가 좋다고 했다. 굳이 좋은 차를 타려고 하지 않았던 게 검소해 보였던 걸까? 하지만 나는 그런 내가 싫었다. 당시의 나는 “차에 별로 관심이 없다”라고 했고, 지금도 그렇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당시에는 내심 이 카니발보다는 덜 오래되고, 평범한(?) 차를 타고 싶었던 것 같다. 핸들에 아무 옵션도 없고(오디오 볼륨을 높이고 낮춘다든가 하는), 터널에 들어가면 전조등도 내 손으로 켜야 하고, 유격(裕隔)도 커서 브레이크도 세게 밟아야 하는 이 차보다 남들과 비슷한 그런 차. 그래서 그때 그 친구에게 “차에 관심이 없다”라고 하면서도 뭔가 떳떳하지 못했다. 나를 속이기 위한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이런 오래된 차를 타도 별것 아니라고, 차가 굴러다니기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서도, 실은 더 괜찮은, 평범한 차를 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두고 있었던 거였다. 어쩌면 나는 카니발이 부끄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대하는 것과 카니발을 대하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못났고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만, 애써 그런 마음은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모습이. 




 본4 여름방학 때 시간이 좀 나기에 수영을 배우려고 했다. 이런저런(주로 공부) 핑계를 대고 나니 나에게 가능한 시간은 토요일 오후 2시뿐이었다. 수영장은 바로 옆 동네에 있었는데, 차로 10분, 걸어서 3~40분 거리를, 그때는 전동 킥보드도 없어서, 버스를 타고 번화가까지 나갔다가 환승해서 다시 들어온다고 고생했다. 심지어 토요일 오후 2시 수업은 초등학생들이 듣는 수업이었는데, 어린이들 사이에 어른 한 명이 머쓱하게 섞여 있으니 강사도 얘는 뭔가 싶고, 나도 이건 뭔가 싶고... 강사가 이렇게 저렇게 알려주는데 나는 부끄러워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 1주일에 토요일 1번씩, 총 4번은 나갔어야 했는데, 2번은 시험 핑계로 나가지 않았고, 2번 겨우 나갔을 뿐이었다. 그렇게 1달이 지나고 바로 그만두었다. 못난 나 자신을 견디는 것도 힘들 때였다. 


 자대 배치 이후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배우다 만 수영 생각이 났다. 다행히도 부대 가까이에 수영장이 있었고,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다시 도전해봐야겠다 싶어서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신청했다. 다행히 6월에 새로 열리는 기초반이 있었고, 정말로 기본부터, 키판 잡고 물에 뜨는 것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있다. 지금은 키판을 잡고서라도 어설프게나마 자유형(크롤 영법 Crawl stroke)을 하고 있다. 호흡 때문에 물을 많이 먹고 있지만. 


 기초반의 대부분은 2~30대지만, 더러 4~50대로 보이는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계신다. 줄을 서서 한 명씩 수영하는데, 아저씨들께서는 배움이 다소 더뎌 뒤로 처지기에 젊은이들을 앞으로 보내신다. 그래서 더러 남들보다 먼저 수영하곤 하는데, 수영하고 뒤를 돌아보면, 나와 비슷한 부분(팔 돌리며 숨쉬기)에서 헤매는 사람도 있고,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어서 안심하곤 한다. 내가 잘난 것도 아니지만 나보다 못난 사람이 있다는 데에서 안도하는 게, 서로 비교하고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하는 게 본능인가 싶기도 하고, 건강한 우등감이란 게 있나 싶기도 하고. 어쨌거나 나는 그분들 덕분에 내가 못났다는 생각을 조금은 덜 할 수 있었다. 




 책 「자존감 수업」에서는 자존감을 3가지(자기 효능감;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느끼는 것, 자기 조절감;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본능의 충족, 자기 안정감;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능력)로 나누었던데, 나는 거기에 자기 확신(self-assurance)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느끼는 것이 맞다는 확신, 내가 생각한 대로 해도 된다는 확신, 내가 나를 믿는, 그런 확신. 사람이 겉으로 강해 보이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을 보면 ‘사람이, 마음이 단단하다’고 느껴져서 부럽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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