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이 Aug 16. 2022

12. 그날은 이상한 날이었어요.

내 마음 들여다 보기 

#20220730 #마음챙김 #일기


 자존과 자만, 아상에 무심에 관하여 계속 생각하다 보니 어느 날은 계속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1. 시내버스를 탈 일이 생겨 버스 정류장에 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길 건너편에 있는 정류장을 보니, 한 젊은이가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장의 의자에 왼발을 올리고 있었다. ‘뭐지?’ 길을 건너가서 의자에 턱 하고 앉았다. 더럽기는 해도 사람들이 앉는 곳이니 발 치우라는 의미였다. 근데 그 친구는 내가 다가가자 의자에서 자기 가방을 슬쩍 치우더니, 다시 발을 올렸다. 그 뒤로도 그는 버스를 기다리며 발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곰곰이 생각했다. ‘그가 내게 폐를 끼친 것이 있나?’ 실질적으로는 없었다. 그는 내가 있든 없든 간에 (아마 평소 하던 대로) 의자에 발을 올렸을 뿐이다. 근데 그 모습에 괜히 내 초자아(의자에 신발 신고 발을 올리면 안 된다는) 내지는 인식이 작동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음이라. ‘이 친구는 왜 신발 신고 의자에 발을 올려놓지?’ 하고 말이다. 


 옳고 그름 또한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이 친구가 왜 발을 올려놓고 있을까’가 궁금해졌다. 아무 생각 없었을 수도 있지만, 혹시 포경 수술이라도 한 건 아닐까? 사타구니에 땀띠라도 생겼나? (그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내가 떠올린 생각 중에 꽤 그럴듯했다. 터질 듯한 반팔티에 반바지, 그리고 클러치백까지 여러분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멋대로 안타까우면서도 웃겨서 마스크 안으로 혼자 웃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든 간에 그 친구는 자기가 기다렸던 버스를 타고 떠났다. 그 친구가 별생각 없이 발을 의자에 올린 덕분에, 나는 내 마음의 경계를 또 하나 느꼈다. 재밌는 경험이었다.      




#2. 2013년 즈음부터 모였던 동문회가 벌써 10년 차다. 이제는 다들 직장인이 되어 어딘가의 병원에서들 일하고 있어서 새삼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재밌는 일은 집에 오면서 생겼다. 나는 버스 시간 때문에 2차 중간에 나왔는데, 나오는 길에 우리 자리 계산을 하고 나왔다. 이 계산에는 모임에 애정을 갖고 이끌어주시는 왕고형님에 대한 감사함과 오늘 자리를 만든 회장에 대한 고마움과 동문들에 대한 반가움 등이 섞였던 결정이었다. 그런데 쓸데없이, 다른 자리의 계산을 한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일어서, ‘잘 먹었다’라는 인사를 기다리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계산한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그런 걱정의 탈을 쓰고 삐져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집에 다 와갈 때쯤 자리가 파했는지 만나서 반가웠다는 인사는 나오는데, 내 얘기는 없었다. 엉뚱하게도, 나보다 먼저 간 다른 형을 얘기하면서, 그 형한테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하는 거다. ‘이게 뭐지?’ 돈 낸 건 나인데, 왜 감사는 저분에게? 사람들은 모른다 쳐도, 왜 본인은 가만히 감사를 받는지? 왕고형님이 일부러 내 얘기를 안 하는 건가? 그 형한테 다음은 네가 사라고 압박을 넣으시는 건가? 혹시 사장님이 다른 자리 술값을 계산했나? 아니면 그 형이 먼저 조금 계산하고, 나는 뒤에 더한 건가? 나도 계산했다고 얘기를 꺼내야 해? 그럼 그 형이 받는 창피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가 아예 관찰자 모드가 되기로 하고, 그 형이 자기가 계산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언제 하나 지켜보자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 얘기가 나오면, ‘다들 모여서 즐거웠던 게 중요하지, 누가 돈 냈느냐가 중요하냐’면서 또 한 번 감동 포인트를 던질 생각까지 했다. 내 마음을 계속해서 거기에 매어두겠다는 거였다. 


 팩트는 나는 모임을 위해 돈을 썼고, 그 마음만으로 ‘내’가 기뻤다는 거다. 거기에 저들이 알아주고 말고는 들어가 있지 않지. 다른 마음들은 쓸데없는 거다. 동문들이 모여서 즐겁게 얘기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고, 돈을 누가 냈느냐는 실은 중요하지 않은 건데. 나는 6만 원 조금 안 되는 돈을 갖고(물론 지금의 나에게는 큰돈이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면서 붙잡고 신경 쓰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글에서는 내가 계산했다는 걸 내가 아니까 괜찮다고 했지만, 더 수준이 높아지면 내가 계산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고 (무심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그런 좋은 마음을 바탕으로 말이다. 이런 일로 또 한 번, 내 안에 나를 알아달라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외진 가고 싶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