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5 #백범일지 #독후감
22년 3월 떨리는 마음으로 훈련소에 입소했다. 의대, 대학병원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며 점점 좁아져 오던 인간관계에 갑자기 낯선 이들이 가득 찼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걸, 환자로도 많이 보고, 경험으로도 느끼고 있었지만, 이렇게 같이 살 부대끼며 땀 흘리고 지내며 다양한 가치관,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내 삶에 들어오는 건 오랜만이라 긴장도 되었다. 개중에는 게으르고 하기 싫어하는 모습들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들도 있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내 나름대로 이해한 건, ‘마음먹으면 일단 움직이자’였다. 나는 생각이 많아서, 해야 하는 일의 대부분을 어떻게 할지 생각만 하다가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야 부랴부랴 해왔다. 할 때 제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어서 시작을 주저했는데, 시작이 늦어질수록 완성도 늦고, 내 마음에도 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시작하고 차차 다듬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마음으로 자대 배치 이후 수영을 등록하여 배우고 있고, 사두기만 했던 책들도 읽고 있다.
김구 선생도 마음먹은 대로 삶을 산 것 같다. 그런데 그 마음에 의리(義理)가 있고, 나라를 생각하니 사람들이 따랐던 게 아닐까. 천민 출신임에도 글을 배우고자 하여 과거도 보고, 동학에 몸담아 접주까지 올랐다가 안 진사의 눈에 들어 고능선 선생의 가르침도 받고,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먼 길 떠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것이 뜻이 있으면 길을 찾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성황후 시해 복수를 위해 일본 군인 스치다(土田)를 죽이고 당당하게 잡혀가는 모습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길을 똑바르게 걸어갔을 뿐이다. 임시정부를 세우고, 의거를 일으키고. 나라를 생각하고 행동하고 마음먹은 바를 굳게 지켜나가는 모습에 사람들이 따랐던 게 아닐지.
김구 선생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어린 나이에 동학 접주가 되어 부담이었을 터인데도, 선봉까지 맡아 전투에 임하기도 하고, 감옥에서는 문맹인 징역수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하고, 탈옥하여서는 불교에 귀의하여 스님도 되었다가 다시 환속하여 교육에 힘쓰기도 한다. 감옥에 다시 갇혔다가 중국으로 넘어가 임시정부를 만들고 군인을 양성하거나 의거를 일으키기도 한다. 본인이 어디에 있든, 어느 위치에 있든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불교에 하심(下心)이라는 단어가 있다. 자신의 마음을 다 내려놓고, 개미와 같은 미물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우자는 것이다. 김구 선생은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우리 민족의 비운은 사대사상 때문이고, 학설은 원래의 것 이상으로 따르니 그 때문에 발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점이나, 오랑캐라도 사람의 행실을 하면 사람으로 대우하면 된다는 것이나, 감옥에 있으면서 도적단(김 진사)에게도 조직을 꾸리는 방법을 배우며, 교육과 문화가 중요한 뿌리임을 강조하신 점 등이 그렇다. 나는 정신과 의사로 개개인의 계발(啓發) 따위나 운운하는 데에 비해, 김구 선생은 우리 민족, 우리나라를 크게 일으키려고 하셨으니 마음의 크기 차이가 이렇게나 커서 부끄럽다.
백범일지에는 참 많은 사람이 나온다. 어떻게 이렇게 한 명 한 명 다 기억하나 싶나 싶다. 나 역시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사람을 거쳐왔고, 또 그들의 도움으로 내가 여기까지 왔겠지. 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내가 김구 선생과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타고난 신분에 따라 달랐을까? 글쎄. 김구 선생은 신분이 천함에도 끊임없이 배웠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신분이 어떻든 어떻게 할 것인지 그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일이 왜를 돕는 일이고, 왜가 하는 일이 우리 민족을 괴롭히는 것이었다면, 내가 먹고사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이웃 보기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겠다. 나 하나의 목숨을 보전하고자 했을지도 모르지만, 시대 상황상 주변 조선인들에게 억울한 일들이 많이 보이고 들리는 탓에 가슴속에 울분이 쌓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이 쌓이다 보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라를 되찾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지 않았을지? 갖은 고문과 회유에 넘어갔을지도 모르지만, 나 하나라도 살아야겠다며 동료를 팔고 부끄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걸 유지해나가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이봉창 의사(義士)의 의거, 윤봉길 의사가 의거 전 자기에게는 1시간밖에 소용없는 물건이니 시계를 바꾸자는 것이나, 돈이 너무 남는다며 도로 주는 것.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안중근 의사가 왼손 약지를 잘라가며 투지를 다진 것. 암살 위험에 처하면서도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어느 한 곳에 안주함 없이 망명 생활을 이어가며 큰 사업을 벌이는 김구 선생. 그들뿐만 아니라,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여러 독립투사들…. 자신의 목숨마저 가볍게(그렇지만 가볍지 않게) 던지는 모습에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겹쳐지며 그들의 의지에 탄복하고 만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게 어떤 마음일지,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을 낼 수 있을까?
답은 나라를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가족을 지극히 아끼는 사람은 가장(家長)이 되고, 학생을 지극히 아끼는 사람은 선생이 되고, 나라를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원수(元首)가 된다. 나라 자체가 된다. 나라를 잃을까 걱정하는 마음,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 농촌을 시찰하며 민생에 관해 고민하는 모습. 그리고 실제로 고민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 생각으로만, 말로만 떠드는 것보다 행동이 따라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주석이 되고자 해서 되었던가? 그가 일찍이 마음먹었던 것처럼, 내 나라 독립 정부의 문지기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나라를 아끼고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의대, 병원을 거쳐 이곳의 의무부대까지 나의 삶은 정신없이 흘러왔다. 나도 지극하게 생각하고 위할 무언가를 찾아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수영도 하고 책도 읽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에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행동이 따라야 한다.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보다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을 수 있어야 장부라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생각뿐 아니라 행동까지 옮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혔다. 생각이 아무리 크고 넓은들 마음에 주저함이 있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랴. 하루하루 생각하고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는 내가 되길 노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