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을 자격
#20230823 #닭죽
J가 우리 집에 놀러 온다기에 엄마는 닭죽을 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급식으로 먹던 닭죽이 떠올라서 손님 대접용으로는 아닌 것 같아 나가서 먹자고 하려다가 엄마가 생각하신 게 있겠거니 하고 가만히 있었다. J에게 저녁으로 닭죽 괜찮냐고 물으니 좋다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J가 오는 날, 엄마는 새벽부터 닭을 삶으셨다. 큰 닭 2마리였다. 삶고 식히고, 아빠와 내가 살을 발라냈다. 엄마는 죽에 들어갈 찹쌀과 녹두를 물에 불리고, 당근, 쪽파 등을 채 써셨다. 그리고 닭 뼈를 한 번 더 우려내고, 거기에 닭고기와 재료들을 넣어 죽으로 끓여내셨다.
닭죽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고, 또 그렇게 끓여낸 죽은 급식에 나오던 닭죽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맛있었고, 더 진했고, 무엇보다 고기가 많았다. 그런 닭죽은 처음 먹었다. 엄마는 날이 더운데 보양식을 먹이고 싶으셨다며, 생각하신 대로 J와 내가 닭죽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엄마의 마음에 가슴이 찡했다.
오늘 남은 죽을 먹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니는 절에서는 밥 먹기 전에 짧은 기도(공양게 供養偈)를 하는데, 삼세(三世) 부처님께, 천지자연에게, 공양을 올려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는 거다. 부처님? 우주의 법칙을 다 깨닫고, 그 이상이 있다는 걸 가르쳐주셨으니까 으레 감사해야지. 공양을 올려주신 분들? 이 재료들이 내 입안에 들어오기까지 길러내고 유통하고 손질하고 조리하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거치니까 감사해야 할 거 같다. 근데 ‘천지자연’은 왜 있지?
지난 법회에서 들은 법문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잡아먹어야 하지만, 그들이 수행하는 것보다 우리가 수행하는 게 더 빠르고 효과가 크니까 그들을 죽이는/먹는 업(業)을 감수하고서 먹는 거라고. 대신 그들의 몫만큼 우리가 더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우리는 커다란 흐름 속에 있다’라는 『강철의 연금술사』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밥 먹는다고 기도할 때마다 생각해야겠다. 나는 오늘 얼마나 세상을 이익되게 했는가? 나는 이들의 희생을 감당할 만큼 세상을 이롭게 하고 있는가? 나는 과연 이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