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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ug 29. 2023

35. 나 혼자 부글부글

옛 인연을 잊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

#20230829 #부글부글 #인연


 일 때문에 다른 과 선생님과 연락할 일이 있었다. 요양급여 내역서에 정신과를 다닌 기록이 있어 채용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혹시 모르니 의료기록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환자를 다 보고 선생님한테 전화했는데, 신호가 가자마자 확 끊겼다. ‘뭐지?’ 당황스럽다가도 화가 났다. ‘전화 받을 상황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은 나중에야 들었다. 화가 우선 났다. 같은 군의관한테 이런 식으로 대접받은 것이 처음이었다. 비슷한 처지들이니까 동병상련으로 서로 잘해주고 하는 거 아니었나? 이런 식으로 대한다고? 왜? 대체 왜? 


 그렇게 끊은 이유가 뭘까 하고 진료 일정을 확인하니 휴가였다. ‘휴가면 다야?’/‘휴가면 그럴 수 있지.’ 양가감정이 들었다. ‘아니, 그래도 받아서 휴가라고 얘기할 수는 있지 않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료 봐달라고 해서 본 사람인데?’ 너무 화가 나서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네가 전화하든 말든 나는 안 받겠다, 앞으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직접 와서 얘기해라, 근데 앞으로 네 일을 도와줄 생각은 없다.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서 악에 받쳐 순식간에 저지른 일이었다. 그리고 환자가 들어와서 진료를 봤다. 


 환자를 보고 나니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수신 차단으로 끊겼다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제야 ‘혹시 전화를 못 받을 상황이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차단을 풀고 전화를 했더니 바로 받더라. 그리고 환자 얘기를 했다. 그렇게 그날은 지나갔다. 


 며칠 뒤 선생님은 출근했는지, 환자가 낸 의무기록과 내가 쓴 소견서를 확인했다고 카톡이 왔다. 인사도 없이 환자 얘기를 하기에 또 화가 일었지만, 상대가 그랬다고 내가 똑같이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인사를 먼저 하고, 환자에 관해서 얘기했다. 그래도 선생님이 보낸 카톡은 맞춤법도 다 맞고, 마지막에는 감사하다고도 해서, 그냥 그런 데에 무심한 사람일까 싶었다. 




 내가 만약 불법(佛法)을 배우지 않았고, ‘나나 잘하자’ 같은 생각을 평소에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있었을 때 상대의 행동을 똑같이 갚아줬을 거다. ‘네가 이렇게 했으니 나도 그렇게 할 거야!’ 물론 가만히 있는데 때리는 거랑 맞아서 갚는 거는 다르지만. 맞아서 갚아주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어도, 상대와 나쁜 인연(惡緣)으로 이어지는 건 맞다. 근데 무슨 인연으로 만났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나쁜 인연이 되면 안 되니까.  

"너도 걔랑 똑같아지는 거야"*


 청법가(請法歌)라는 불교 노래가 있다. 법문을 듣기 전에 스승님께 법을 알려달라고 부탁드리는 노래다. 이 노래에 ‘옛 인연을 잊어서 새 인연을 맺도록’이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잊는다’라는 표현을 나는 ‘매이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내가 전생에 뭘 지어놔서 이번 생에 연(緣)이 닿아 이렇게 만났는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참고 잊어야 좋게 바꿀 수 있다. 그게 좋은 인연(善緣)이면 좋은 마음이 일어나니까 좋게 대해주기 쉽겠지만, 받은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돌려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쁜 인연이면 나쁜 마음이 일어날 테니 좋은 마음으로 뒤집기가 매우 힘들다. 그러나 인연법(因緣法)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한 생 태어났을 때 좋은 인연을 많이 남기고 가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도 잠깐이었지만, 차단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맞으면 되돌려주는 게 사람이 보통 가질 수 있는 마음(人之常情)인데, 종교는 그걸 거스를 때가 있다. 이럴 땐 이해하기 어렵다. 각자의 인식(認識)을 벗어나는 것들은 믿음의 영역이다. 이 경우에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인연법(因緣法)이라는 부분이 그렇다. 


**청법가에 대해서 찾다 보니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대불련 홈페이지에 비슷한 내용이 적혀있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자료실, [청법가 바로알고 부르자[펌]]

http://www.kbuf.org/bbs/board.php?bo_table=303020&wr_id=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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