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을 12년 동안 할 수 있었던 원천은 수치심

8살에 X 같다는 감정을 배운 날

by 이돈독

정확하게 초등학교 1학년 2학기부터

고3까지 나는 12년 동안 반장을 했다.

리더십이 좋아서? 인기가 많아서?

그건 나중 문제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반장을 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8살 어린아이에겐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장면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박혀있다.


브런치3.png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학기말이 됐을 때,

담임선생님은 반장에게 학기 초에 제출했던

주민등록등본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반장은 맨 위에 적힌 이름을 보고 중간에 있는

가족들을 보며 친구들에게 나눠줬던 것 같다.

한 명 한 명 나눠주다가 나에게 반장은 물었다.


돈독아, "너는 왜 엄마가 없어?"

이 말을 하는 순간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몰려와 나의 등본을 보더니

"진짜네 왜 엄마가 없어?" 라며 나에게 물어봤다.


| "나에게 그 장면은 수많은 악마들이

| 나에게 몰려와 취조를 하는 듯한

| 느낌이었다."


알고 있다. 그때의 아이들은 나에게 악의를 품고

물어본 것이 아니라 정말 왜 엄마가 없는지에 대해

물어본 것이지만

나는 너무나도 창피한 마음에 얼굴이 벌게지고

심장이 찢겨나갈 듯 쿵쾅거렸다.


애써, 태연하게 등본을 빼앗고는 8살인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내가 엄마 이름을 안 적었나 보다"라고 말하는

새빨간 혹은 착한 거짓말이었다.


| 나는 X 같다.라는 감정을 이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창피함과 수치스러움을 느껴야 하는 감정.

| 그게 너무 치욕스러워 나는 그 이후 매번 반장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나는 그 이후 반장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고

내가 등본을 나눠줘야

나의 비밀이 밝혀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브런치2.png


| "그때의 선생님, 친구들은 알까?

| 내가 1시간 먼저 나와 환경미화를 하고,

| 우유 급식 배달을 하고, 발표를 시키면 제일 먼저

| 손 들던 그때 나의 모습은 진심이 아니라,

| 그저 수치스러움을 피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었다는 걸."




그렇게 수치스러움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 채


그렇게 살아버렸다.


『불행팔이소년: 나는 이렇게 살아도 살아버렸다』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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