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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JUNG Jul 08. 2023

지난 명함 정리

24년간 모은 명함을 모두 버렸다

나는 기록을 많이 한다.   


아주 많이 적는다.   회사에서 쓰는 업무 다이어리도 1년에 평균 4권 이상씩 기록에 사용한다.  그날의 할일(To do list) 들은 물론 각종 외부 미팅 및 내부 회의 시에도 참가자들의 발언 및 논의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한다.


또한 해외 출장용 작은 휴대용 메모 수첩별도로 있고, 모든 출장 중에 미팅 참석자 와 미팅 내용을 포함 갖가지 일들을 자세히 적는다.  이러한 메모는 미팅 회의록(meeting minutes)이 되고 추후 다시 출장 전에는 항상 참고를 위해 읽어보는 좋은 자료가 된다.


개인용 다이어리도 해마다 2, 3권씩 적는다.   


개인 기록을 위해선 몰스킨 수첩을 몇년간 애용했었지만 개인 메모는 주로 만년필을 사용하기에 몰스킨 종이가 만년필 번짐이 심해서 지난 10여년전 부터는 일본 미도리사의 MD노트와 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있다.

몰스킨 수첩, 미도리 MD 다이어리 그리고 만년필

입사 이래로 회사 업무 다이어리들과 개인 다이어리들을 계속 보관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게다가 지난 1999년부터 지금까지 직장 생활동안에 주고 받은 명함들도 모두 명함첩에 년도별로 모아 두고 있었다.


글로벌 업무의 특성상 해외출장 중에 만나는  파트너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름의 명함관리는 중요한 기록이었다.


특히 지속적인 업무관계가 없는 상대의 경우엔  생소한 외국 이름만으로 그사람을 시간이 지난 후에 기억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따라서 명함에는 받은 날짜, 그사람의 업무 담당 외에 그 상대방을 기억할 수 있는   특징들에 대해서 메모를 해두었다.   


명함에는 서로 명함을 주고 받은 미팅일자를 제일 먼저 적은 후에 나중에 그 상대방을 기억 할 수 있도록 나의 기억을 도와줄 간단한 메모를 남긴다.   예를들어 해당인의 주요 업무, 안경, 대머리, 보수적, 여자, 누구의 소개, 한국어 조금 함, 저녁 같이먹음, XX내용 발표함, 술 쎔, 전에 XX근무 등등  몇년이 지나도 해당 명함을 보면 그 사람이 떠오를 수 있도록 key words를 적어둔다.


출장 시에 항상 미팅 노트를 자세히 기록 하기에 명함(명함의 메모)과 미팅기록을 매치하면 십여년이 지난 명함의 주인공도 그때의 기억이 대부분 나곤한다.


하지만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보니 기간 기록한 업무 다이어리들과  모아둔 명함집 등이 사과 박스 크기로  몇박스나 되었다.   


이제는 실질적으로 필요도 없는 자료들이 나의 삶의 기록이라고 그동안 너무 고이고이 모시면서 쌓아둔것이 아닌가 하는 현타가 왔다.  


1999년에 만났던 사람이 그 회사 그 자리에 있을까?


업무적, 개인적으로 지속 연락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핸드폰, 이메일 등에 모든 연락처가 있는데 굳이 이렇게 몇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오래된 기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나의 편집증과 과거에 대한 집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 버렸다.


분리수거 폐기를 위해서 그간 고이고이 보관해온 명함첩에서 명함을 한장 한장씩 꺼내서 버렸다.   그 명함들에는 10년 15년 20년전 기억이 또렷이 떠오르는 키워드들이 적혀 있었다.   그날의 만남, 그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영화 장면들 같이 머리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이제 지나간 과거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와 현재에 좀 더 집중을 하고자 한다.   지난 추억을 되새기고 곱씹기보다 새로운 추억을 만들 준비를 현재에 충실히 하자라는 마음을 24년만에 하게 된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실행만 할 수 있다면 그게 결국 한참뒤에 되돌아보면 그 실행이 결국 가장 빠른 결정이지 않을까?


24년의 과거를 분리수거 하니 시원 섭섭하다.




ps1)  이러한 나의 메모습관과 기록들이 나의 첫 책인 '다시, 글로벌(re, Global)' 집필 시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ps2) 메모를 위해서 기록과 필기에 관심은 자연스레 필기구들에 대한 관심, 수집으로 이어졌다.  나의 만년필에 대한 수집도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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