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테크 기업들은 미국 기업을 따라 하는 패스트 팔로워가 많다. 알리바바는 아마존을, 바이두는 구글을, 샤오미는 애플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중국에도 퍼스트 무버가 있다. 세계 드론 시장의 70%를 장악한 DJI가 그 주인공이다. 미국의 기술이 제품에 반영되어 있긴 하지만 DJI는 지난 10여 년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드론계의 퍼스트 무버다. 홍콩 과기대 출신 젊은 창업자의 열정과 기술이 그 바탕이다. 타고난 사업 능력과 선전의 제조 입지도 한몫을 했다.
팬텀 시리즈
DJI 창업자 프랭크 왕은 초등학교 때 부모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원격조정 헬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자주 추락하는 헬기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홍콩 과기대 졸업 과제로 헬기 비행 제어 장치를 택한 것도 어린 시절 경험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원격조정 비행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된 비행이다. 그가 플라이트 컨트롤(Flight Control)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에 특히 몰두해 졸업과제로 택한 것이 DJI 기술력의 기반이 되었다. 막상 졸업시험에는 C밖에 못 받았지만 학교 친구 두 명과 창업한 계기가 되었다. 사업능력을 알아본 지도교수 리쩌상은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고 실제 투자를 해 DJI의 10% 지분 보유자다.
품목을 헬기에서 드론으로 바꾼 것은 뉴질랜드 중개상의 조언 때문이었다. 헬기 구매자의 90%는 드론을 사더라는 말을 듣고 품목을 전환했다. 2006년 창업 후 7년 만에 히트작 팬텀이 나왔다. 당시에 드론은 DIY 식으로 조립되던 시절이라 팬텀은 드론 시장을 흔들어 놓았다. 박스를 뜯자마자 바로 날릴 수 있는 완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콜린 귄(Collin Guinn)이라는 미국의 영상 전문가와의 만남으로 카메라 일체형 모델인 팬텀 2가 나왔다. 2011년의 매출 4백만 불은 2013년 2억 불로 뛰었다. 그 사이 미국의 액션캠 업체 고프로와의 협업을 통해서 카메라 품질도 좋아졌다. 고화질 카메라, 3축 짐벌(촬영 시 흔들림 방지 장치)을 갖춘 모델 팬텀 2 비전플러스는 격렬한 스포츠 촬영도 가능해졌다. 비록 콜린 귄, 고프로와는 그 후에 결별을 했지만 두 파트너 덕분에 제품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다.
혁신 스피드
중국에는 1300여 개의 드론 기업이 있다. 세계 드론 시장은 70%가 군수용, 30%가 민수용이다. 군수용은 미국, 이스라엘 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30%의 민수용 시장은 그중 90% 이상이 중국 기업들 차지다. 퍼스트 무버 DJI의 중국 내 영향을 짐작케 한다. DJI의 점유율은 70%다. 역사가 꽤 있는 미국의 3DR, 불란서의 패럿도 중국 신생기업들의 위협을 받고 있다. DJI의 특징으로서 스피드가 자주 언급된다. 보통 2-3년에 모델 하나가 나오는 경쟁사에 비해 6개월 만에 새 모델이 나온다.
기술 제일주의의 DJI 경영철학과 함께 창업 천국인 선전의 제조 입지도 성공 포인트이다. 실리콘 밸리의 2주일은 선전의 하루다. 실리콘밸리의 개발비용 1000불은 선전에서는 30불이면 된다. 마케팅 능력도 중요한 포인트다. 초기 팬텀 출시 때 프랭크 왕은 미국 영화계, 기술계 인사들에게 제품을 무료로 제공했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 같은 인사들에게 안겨진 선물은 ‘사우스 파크’,‘빅뱅이론’ 등 영화와 드라마 촬영 도구로 쓰였다. 프랭크 왕의 모토는 격극진지 구진품성(激極盡志 求眞品誠)이다. 열정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뜻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