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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Apr 07. 2023

내향적(I형) 인간에게 크로스핏을 허하라

집단 운동을 통한 내향성 극복기

무려 4개월 간의 내돈내산 1:1 피티로 (어디 가서 얘기하기도 수치스러운) 약 4kg의 소소한(?) 감량과 함께,

"네 담당 트레이너는 무슨 복이냐. 살이 안 빠지니까 또 10회 등록하고 안 빠지니까 또 20회 등록하고 호구 고객 제대로 잡은 거지."라는 남편의 뼈 때리는 말과 함께, 몸을 키우는 개념의 피티보다는 더 혹독히(?) 굴리는 운동을 해보라는 조언을 받고 크로스핏을 해보기로 했다.


오늘 정식 수업을 등록했고 체험포함 지금까지 총 세 번 정도 수업을 들었다.


선배가 말한 크로스핏이 이런 거였나요...


신입 피디 때 <1박 2일>을 유호진 선배 밑에서 했었는데, 그때 호진 선배가 크로스핏을 등록했다가 운동도 못해서 죽을 지경인데 다들 얼굴을 알아보고 "유호진 피디 파이팅!!"을 하도 외쳐서 너무 창피해서 그만뒀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그로부터 거의 9년이 지났으니 좀 달라졌으려나.

최근에 혼자 있게 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면서 더욱 나 스스로 내향적 성향이 짙어졌다고 느꼈기에 집단 운동이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걱정은 현실에서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일단 크로스핏은 준비운동부터 여러 명이 수건돌기리 대형으로 모여서 시작한다.

대학교 오티 때 이후로 이 대형으로 앉아본 것 자체가 처음인 것 같은데 다들 익숙한지 주먹을 부딪히며 인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운동 시작. 

운동을 대체적으로 다 못하지만 팔힘이 유독 없는 나는 철봉 매달리기를 유독 못한다. 


그런데 크로스핏은 2명씩 짝을 지어 내가 철봉 매달리기 미션을 수행해야 파트너가 다음 미션을 수행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저질 팔로 대롱대롱 매달리는 걸 버틴 후에 파트너에게 "출발!"을 크게 외쳐줘야 한다.


매달리는 것도 큰 미션이지만, 소리 내어 처음 본 사람에게 "출바알~!!!"이라고 외치는 게 나에겐 더 공포스러웠다. 


그게 너무 걱정이 되어 팔 아픈 건 신경도 못쓰고 있는데, 처음 본 내 또래 남자 회원이 우물쭈물하는 나를 향해 엄청 큰소리로 외쳤다.


"고고고고고!!!"


어떻게 초면인 사람한테 저렇게 호통치듯 "고고고!!"를 외칠 수 있는가. 충격에서 헤어 나올 틈도 없이 옆 커플들은 "은지 님 파이팅!!" "할 수 있드아!!"를 외치고 있다. 


나의 마음속 수치스러움은 에너지 만렙인 코치님의 호통과 박수 그리고 신나는 세기말 음악이 덮어주었다.

그리고 운동 마무리는 역시 캠프파이어 대형으로 모여서, 손을 모으고 파이팅을 외치고 로고 앞에서 100년 우정을 자랑하듯 단체 사진을 찍으며 마무리되었다.


아 혼란하다 혼란해.


끝난 줄 알았는데 처음 본 사람 10명이 양 주먹을 내밀며 나한테 다가온다.

'이건 또 뭐지?' 싶었는데 늘 그렇게 고생했다는 의미로 캥거루처럼 양 주먹을 부딪히며 인사를 하는 것이 크로스핏의 문화(?)인 것 같았다.


나름 오늘이 세 번째 수업인데 이 소소한 스킨십이 어색해서 나는 정부 행사에라도 온 냥 목례까지 같이 굽신거렸다.


일대일 피티와의 또 다른 차이는 크로스핏은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특정 부위를 늘씬하게 한다는 느낌보다는 나 자신과의 싸움 or 기록에서 이기는 게 중요한 듯했다. 


그리고 트레이너와 사담 나누듯 했던 피티와 다르게 다들 목소리가 엄청 크며 내가 마칠 때까지 모두가 박수를 치며 대놓고 파이팅을 외쳐준다.


이 수치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호진선배는 그만두었다고 했지만, 

사실 나도 선배 못지않게 부끄럽지만,

3개월 치 목돈을 시원하게 긁고 온 만큼 내향성을 운동으로나마 극복해 보리라. 


"편은지 회원님 할 수 있드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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